차별공감, 평등셰어! 발언문 모음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2022 릴레이 단식행동 <평등한끼> 국회 앞 집회 

차별공감, 평등 셰어!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발언문 전문 

🌈 조미경(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안녕하세요. 장애여성공감 조미경입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갑자기 쓰러진 뇌출혈로 인하여, 1년 내내 갈 수 못했던 이 운동 현장입니다. 

그러나 차별을 끊고 평등을 잇을 수 있도록, 

차별금지법 제정을, 동료들과 함께 큰 목소리 외치고 싶어서, 

오늘, 다시 힘을 내어 이 운동 현장을 나갔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고, 자신의 존엄성을 존중받으며, 사람들과 함께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 이는 모두가 원하는 삶입니다.

따라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최소한 ‘공적 영역에서의 차별금지 원칙을 세우기는 것’이며, 

이는 ‘국가의 책무’임을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그러나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을 좌절시켰던 것이, 국회입니다. 

 

너무도 간절히 원했던 차별금지법 제정입니다. 

장애여성공감 운동을 하면서 단 한 순간도 놓을 수 없었고, 운동 현장마다 매순간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쳤습니다. 

장애여성공감은 15년을 넘게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함께, 수많은 단체, 활동가들, 그리고 시민들이 간절히 원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운동을 하였습니다. 

전국 평등버스를 다니며 차별금지법 제정의 중요성을 나누었고, 곳곳에서 토론회, 간담회, 선전전, 농성장, 오프라인/온라인 최선을 다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2020년 21대 국회에서는 시민 10명 중 9명이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왜, 아직도, 국회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고 있습니까?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국회 한 명, 한 명 직접 얼굴보고, 확신 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 하나 따지고 싶습니다.

 

너무도 할 얘기가 많지만, 누구보다 우선 

”구조적 성차별 없다“라고 발언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출근하신 시민을 볼모삼고 있다. 저지하겠다”라고 발언한 이준석 국민의힘당 대표에게  

차별을 받고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무엇이 ‘차별’인지 배우고, 차별금지법 제정이 왜 필요한지 깨닫고, 제정을 실천하기를 요구합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세상에 모든 차별이 한 순간에 모두 다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회는 국가가 헌법에 명시된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실천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차별금지법 제정은 더 이상 차별이 용인되지 않는,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한, 어떠한 재난이 와도 지금보다는 덜 불안하고, 서로를 의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의 약속하며 실천하기 원합니다. 

 

저는 중증장애여성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장애여성 운동을 하면서 차별과 억압이 무엇인지 사람들과 만나며, 토론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뇌출혈 후 지체장애만이 아니라 청각, 시각, 언어 장애가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 보고, 듣고, 말하고, 소통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너무도 미치도록 답답한 ‘사회 주변과의 단절하고 고립된 소통과 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느끼지 못했던 차별들을 하나하나 깨닫고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기적처럼 다시 살게 된 이유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차별과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떠나게 된 수많은 동료들을 기억하며, 제가 할 수 있는 운동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저는 어느 순간 떠나게 되는 그날이 오기 전에, 적어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꼭 받고 싶습니다.  

 

장여여성공감은 단일한 정체성으로 환원 할 수 없는 장여여성의 경험과 위치를 논의하며, 

장애/여성/인권/소수자 운동을 서로 교차성을 찾으며, 드러내고, 나누고 있습니다. 

장애여성공감은 반성폭력, 독립, 탈시설, 섹슈얼리티, 성과재생산 권리 등 폭넓은 의제와 운동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함께 연대하며 투쟁하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너무 간절히 원합니다.

 

적어도 21대 국회 안에서 반드시, 차별금지법 제정이 쟁취하기 위해서, 연대 동료들과 함께 투쟁합시다! 투쟁!

🌈 정주희(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안녕하세요,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정주희입니다. 

 

한국에는 장애계의 투쟁으로 만들어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장애계와 장애여성공감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함께 하는 이유가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장애여성공감이 지나오고 향하는 길로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장애계는 장애인이 동정의 대상이길 거부하며 권리의 주체로서 장애인에 대한 돌봄의 책임이 국가에 있음을 외쳐왔습니다. 그렇게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활동지원현장에서 코로나19 확진 등으로 인한 돌봄 공백에 대해 국가는사실상 혈연가족에 의한 지원을 대안으로 두고 있습니다. 제도 안에서 실제적으로 돌봄을 하는 이들은 가족 내 여성들이지만 성차별적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돌봄을 받고 의존한다는 것은 조력을 받는다는 사실에서 그치지 않고 도덕적 지탄의 대상으로 여겨져왔습니다. 돌봄이 필요한 이들은 독립적이지 못하고 ‘기능적으로 문제가 있어’ 사회와 국가에 부담이 되는 존재라고 받아들여져왔고 돌봄을 수행하는 이의 노동도 인정되지 않습니다. 이는 자본주의 체계안에서 임금노동에 진입할 수 있는 자격을 비장애신체를 가진 남성으로 제한하며 ‘노동할 수 없는’ 존재들을 가두고 억압해온 역사, 국가, 자본 편의에 따라 이성애가족 내 성역할을 구분지어 여성에게 평가절하된 돌봄재생산 노동의 책임을 전가해온 역사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돌봄이 상호적으로 이뤄진다는 전제는 무시된 채 돌봄을 받는 이, 수행하는 이의 역할을 구분지으며 사회는 이들의 존재 가치를 낮춰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적으로 돌봄을 주고 받으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돌봄은 서로를 살피고 존중하며 이뤄질 때 충분한 정보 접근이 가능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며 선택하고 실현할 수 있게끔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의존과 독립은 대척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서로의 존엄을 위한 돌봄을 어떻게 주고 받을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돌봄이 혈연 가족안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장애여성은 고립되게 됩니다. 국가가 생각하는 정상가족의 문제는 무엇인지,  존엄한 돌봄을 위해 어떻게 책임을 나눌지 같이 고민하고 변화시켜 가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시민의 평등을 보장하는 다양한 삶을 차별하게 두지 않는 차별금지법이 장애여성에게도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장애여성공감의 운동이 그러해왔습니다. 비장애 남성중심의 운동에서 장애여성공감은 나는 장애여성임을 외쳤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투쟁에서도 장애라는 정체성 안에서 교차하거나 중첩되는 다양한 정체성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알려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장애계가, 이러한 고민을 이어온 장애여성공감이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사람의 삶을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이야기하기 어렵고, 복잡한 정체성들을 고려하며 소수자들과 연대할 때  한 사람의 삶도 자유롭고 평등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으로, 노동자로, 성소수자로, 돌봄을 받고 행하는 이로 저에게도 연대와 연결의 정치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우리의 삶이 온전하기 위해서는 다층적인 고려가 필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차별받는 것은 구조적 차원에서 다른 소수자들의 차별과 이어진다는 사실을 법으로 명시하는 것입니다.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를 규탄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우리는 더욱 강하게 투쟁할 것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함께합시다. 투쟁!

🌈 김미진(장애여성공감 배우, 활동가)

 차별을 깨고 우리의 삶에 자유를~!!

 

 안녕하십니까?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 배우 김미진입니다.

 

발언을 앞두고 저의 55년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제가 움직였던 영역안에서 체감한 저와 가족, 친구, 친지, 이웃 등의  삶에서 또 읽고, 보았던 책과 영화속 주인공들의 삶에서 느꼈던 희노애락이 가슴속 기억에 여전히 들러붙어 있었습니다. 

 

다양한 정체성, 관계, 공간, 역할안에서 차별로 인해 발생했던 우울과 갈등, 폭력, 죽음이 연결 되었고, 변화를 바라지만 분노와 저항의 방식을 이해받지 못한채 홀로 몸부림치다 스러진 사람들이 

고통받은 이유가

지금 우리가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의 내용중 차별의 사유에 들어있는 장애, 여성, 학력, 성적 지향 등으로 인한 차별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두살에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지체 장애가 생긴 이후 김미진이라는 사람보다 김미진의 장애를 먼저 훑고, 무능할것이라는 편견으로 선의적인 배제를 하는 이들 곁에서  순간순간 얼어붙는 긴장으로 침묵과 순응, 미숙함이 더해져  자존감이 껌딱지처럼 눌리고 굳었었습니다. 

너 정도는 장애도 아니야, 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그 말은  저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뭘 더 해야 한다는 건가? 뭐든 할 수 있다는 건가? 

현실적으로 동생들 잘 챙기고, 잘 웃고, 부모님 마음 편안하게 해드리는거 외에 

   홀로 있을때 산책, 글씨, 그림, 만들기, 시 낭독 등의 작은 움직임 등으로 바닥난 자존감 긁어 모으며 10대를 채웠습니다.

 

20대에는 좀 달라졌을까요? 고졸의 장애여성이  성인이 된 후 아무런 자원 없이 정말 뭔가 해야한다는 강박으로  자투리 가죽을 이어 붙이는 부업을 시작했습니다. 생애 처음하는 공적인 일이었습니다. 적지만 일주일마다 꼬박꼬박 댓가가  주어졌고, 동생에게 중고 자전거를 사줄 수 있었고, 사장님의 잘했단 칭찬이 좋아서 1년 정도 했었습니다. 그러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부업은 부업일뿐 직업을 가져야하지 않겠냐고 하시는 이웃분의 말에 자극을 받아 취업을 결심했습니다. 당시 집은 일산쪽에 있었습니다. 멀리 보낼 수 없다는 부모님을 설득해 전라북도 전주 남대문 시장에 있는 한복집에 취업을 했습니다. 가 보니 86세의 사장님과 49세의 직원 한분이 계셨습니다. 한옥방 한칸에 두 대의 재봉틀이 돌아가는 한복집이 일터이자 숙식공간이었습니다. 수도와 화장실이 외부에 멀리 떨어져 있었고, 정해진 임금 없이 목욕비와 생리대 등 필요한 것이 있을때 용돈처럼 돈을 받았고, 한복의 고름, 끈 등 부속을 만드는 것과 하루 세 번의 설거지를 하는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공간이 주는 불편함과 임금에 대한 불만이 있었지만 관계적으로 서로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한복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며칠 지나 여고 동창이 미스춘향 선발대회에 출전하기 위에 한복을 맞추러 온 일이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는  했지만 이렇게 이 공간에서의 만남이 비교의식을 부추겨 며칠 우울감에 빠졌던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현실에 직면해야 했기 때문에 오래가진 않았습니다.  수도와 화장실이 외부에 멀리 떨어져 있었고, 화장실은 시멘트 바닥에  직사각형 구멍이 뚫린 아차, 하면 빠져버릴 수도 있는 지옥이 연상되는 위험한 구조였습니다. 장애가 있는 저의 몸이 그 공간에서 일상을 보내기에는  너무 불편하고, 안전하지 못했습니다. 연탄으로 난방과 취사를 해야하는 상황, 세면, 용변, 빨래 등 모든게 어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무엇보다 시장통에 있는 한복집이다보니 밤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지나가면 밤새 두려움에 떨어야 했었습니다. 옆 한복집에 있는 언니와 통화하며 서로 위로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의 경험은 이후  다른 장애여성들과 차별적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때 떠올리는

공간, 시간, 관계, 역할, 구조 등과 연결되며 차별에 대해  생각을 넓혀가게 해주었습니다. 

 

 차별이란 개념이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불안과 불편함을 제대로 표현하거나 정리해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10대 때는 장애 청소녀의 기질, 성격 탓이려니 짐작만 하고 넘어갔었습니다.

20대 초반에는 사람노릇하기 위해 주어진 상황에서 참고 견디는 미덕을 최선으로 여기며 욕구를 구겨넣고 생동감 없이 순한 노동자로 지냈습니다. 

20대 중반에는 20대 초반에 구겨넣었던 배움, 취미, 신앙의 욕구를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30대가 되었고, 결혼, 출산, 육아, 돌봄을  저의 역할로 믿으며 아내와 엄마, 며느리, 형수, 올케 등의 호칭을 들으며 행복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나름의 답을 하며 집안의 노동에

올인했었습니다. 

 

지금은 마흔 세살에 만난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회원, 반상근, 상근 활동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사회적 소수자의 삶, 

장애여성의 노동을 새롭게 정의해야 하며 장애에 따른 자원과 속도의 차이를 고려한 노동현장, 노동의 내용, 지지와 조력의 방식, 제도와 예산 확보를 위한 투쟁을 접하며  극 단 춤추는 허리에서 장애문화예술운동을 하며 차별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고 성찰하며 다 같이 잘 살기 위한 활동에 집중해가고 있습니다.

 

삶의 여정에서 

단 한번도 

차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차별받은 사람들의 

말하기를 돕는 법, 

차별금지법.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 법,

차별금지법을 반드시 제정해서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모두가 시민이며 시민 모두가 자신의 존엄과 권리를 되찾아 자유를 누릴수 있도록 끝까지 투쟁합시다~

투쟁!!

🌈 조화영(장애여성공감 배우,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장애여성공감 춤추는허리배우 조화영입니다!!

 

저는 2009년 당시 복지관에서 처음 들어왔을 때 신입 직업훈련생 되기 전에 프린텍골드 다용도 테이프 케이스 작업 실습을 하였는데 너무나 힘들었지만 참고 열심히 훈련을 받고나서 “실습이 끝났어요. 

집에 돌아가서 기다려주세요”라고 대답해주셨는데 완전 까칠해보여서 난 더많이 긴장되고 초조해지면서 내가 뭐 잘못했나 실수했나 나만의 자책을 하였습니다!!!

 

드디어 연락이 와서 합격되서 훈련생이 되어서 가족이랑 별로 안 친해도 가족사진을 한참 보내달라고 하였는데 왜 찍어야하는지 도대체가 이해도 못한 상태여서 아무도 알려주지도 안 해줘서 난 이유없이 가족 사진을 결국에는 찍고 말았습니다.

 

첫 신입 직업훈련반으로 출근하자마자 출근 도장찍고 갑자기 어떤 훈련생이 뛰어갔습니다. 저도 가는 데 운동장에 집결해서 국민체조하고, 100바퀴 돌고 제자리에 와서 “1.2.3.4.5.6.7.8.9.10 번호끝” 외치고 “내일은 잘하자 화이팅” 외치고 “훈련실로 뛰어가세요” 라고 해서 달리기 늦어서 “너 왜 느리니”하여 뭔가 초조하고 점수 깎일까봐 두려워서 불안에 떨면서 노마르지24색싸인펜작업을 끼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간을 재서 얼마나빠르는지 시간 30초 동안 제서 빠르면 월급이 올라가는 검사를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왜 작업시간 검사를 제야하는지 납득이 안가요. 

 

직업 늘려 다른 일 주지도 않고, 또 같은 일만 주시고 어떤 사회실습분이 미니머핀을 사오셨는데 딱 하나씩 나눠드리려고 하셨는데 애네들은 그냥 주면 안 되니까 작업시간 제는 데 빨리하는 사람만 줄꺼라고 했는데 저는 아무리 잘해도 못 받아서 늘 복지관에서 너무나 차별이 심해지고 

 

그리고 또 늦게 오거나하면 무거운 아령을 들고 앉았다 일어났다 벌을 받고, 운동장 100개 뛰고 돌아와서 줄넘기 못넘으면 또 100바퀴 돌고 줄넘기하고, 또 운동장을 돌고 작업을 명찰작업과 숫가락 작업 포장을 둘 다 하다보니 너무나 힘들고 조마조마 하면서 점수 많이 받으려고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느리냐고 얼굴도 못생기면 작업을 빨리해야지” 차별을 받고 말았습니다. 복지관에서 온갖 모욕을 받았고 작업을 해왔습니다.

 

한참 뒤 2010년에 동천모자공장에 실습하러 가서 직업 어느정도 되는지 실습을 하였는데 모자라벨 붙히는 작업을 하였고, 그리고 또 모자 챙을 깎았는 데 엄청 쉬운 일이 아니었고 어려워서 모자 속을 다 잘라먹어서 욕을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너무 그 욕이 얼굴과 몸매가 이쁘면 내가 봐준다 희롱까지 받아가면서 실습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왜 발달장애인과 모든 장애인분들이 희롱까지 받아가면서 일을 해야만 하는지 누구도 그 선에서 나서지 않았고 보기만 하였습니다.

 

드디어 나도 동천모자 직원이 되어서 면접을 보고 집에 돌아가라고 해서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전화가 와서 합격됐다고 출근 9시까지 오시라고 해서 왔는데 

처음 미싱을 올라앉아서 끈을 받고 모자챙 라벨을 붙히는 과정에서 혼이나고 말았습니다.

“너 일 똑바로 안 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일하니. 얼굴과 마음 몸매 가슴 쭉방이면 말을 안 한다”며 몸비교를 받아가면서 모자 챙을 까고 라벨 붙히고 미싱 연습하고 우체국 모자끈을 받고 검사받고 제대로 안했다며 혼나고 다시 기회를 주세요 잘할게요. 

 

그리고 시다를 도와주는 일을 하면서 얼굴이 몸매 늘씬함 가져야지 일도 동작도 빨리움직이지 어느 세월에 하게되니 남을 비교하면서 저는 일을 하였고, 

성차별이 너무 심하고 한참뒤 일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는 데 신체장애여성이 계단을 기어왔는데도 아무도 도와주지도 않았고 신체장애여성이 저 일하게 해달라고 목소리 말을 하였는 데도 일을 하는 거 허락을 안 해주셨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신체장애여성분께 “여기는 올 사람이 아니니 다른 데 알아보세요” 라고 이야기 나누시고. 그분 가신 후 욕을 하였는 데 듣기가 거북하였습니다.

“신체 다리없는 불편한 몸으로 오는 사람이 여기를 어디라고 왔냐”고 몸비하를 하였습니다. 너무 성차별과 모욕을 당하고 있는 게 심각한 상황에서 모두가 평등한 삶을 살기위해 차별을 받지않는 세상이 와야하는 이 사회가 바꿔야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차별 안 받는 대한민국땅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즉각 이행하여 주십시오. 국민의힘 위원님 그만 혐오 멈추고 모든 시민이 차별하지않는 세상을 위해 모두가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합니다.

제가 하나 외치면 따라 외쳐주세요.

 

하나 모든 국회위원님들은 즉각 차별금지법제정 이행하라!!

 

둘 윤석열당선과 이준석위원은 들어라. 장애인혐오발언에 대한 모든 장애인분들께 사과하라

 

셋 성차별 비하 발언하지말라

 

넷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 촉구하라

 

투쟁

🌈 서지원(장애여성공감 배우,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활동가 서지원입니다.

 

차별금지법을 위한 2022 릴레이 단식행동(평등한끼)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처음 혼자서 집밖으로 나오게 된 경험을 나누려고 합니다.

 

제가 장애인이동권 보장을 알게 된 건 20대 초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갈곳이 없어 집에만 있던 제게 친구가 자원봉사를 섭외했다고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너무 신났습니다. 차가 없으면 누가 동행하지 않으면 이동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저의 고정관념을 깨주었습니다. 지하철 타는 길은 멀었지만 설렘임이 가득했습니다. 

 

네모난 상자, 이상한 괴음, 수동으로 조정하는 스틱,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어요. 덜컹 덜컹대고 위태로운 상자에 올라가야 했고 부실한 안전바 하나에 저의 목숨을 맡겨야 했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야 했죠. 수동스틱을 내 스스로 조정 못하는 것이 민폐라고 생각했습니다. 떨어질까봐 무섭고 무서움을 감수하지 않으면 다시 집밖으로 나오지 못할까봐 떨림을 신남으로 두려움을 즐거움으로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금 지금도 장애인들은 “이동권을 보장”을 외치면서 아침마다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안에서 한시민분이 조용히 함께 있던 지인에게 이러더군요 ”야 타지마“ 참 이상하지요. 정말 작게 이야기하셨는데 왜이리 잘 들릴까요? 우린 이렇게 있는 힘을 다해 외치고 있는데 왜 국회에 가닿지 않을까요?

 

윤석열 당선자는 “구조적 성차별 없다“ 하셨는데 장애여성인 저는 일상적으로 성차별을 경험하는데 이거 그럼 제 탓입니까? 밖에 나올때 아직도 “예쁘다 놀러가냐? 나이가 몇이냐? 질문 받습니다. 왜 밤에 혼자 콜택시 타거나 지하철 이용할 때마다 긴장을 할까요. 이게 제가 징애여성인 탓입니까? 구조적 성차별의 결과입니다. 

 

남성, 여성을 갈라치기 하던 이준석 당대표는 “출근하신 시민을 볼모삼고 있다. 저지하겠다” 발언으로 시민 갈라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동이 장애인만의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동이 장애인만 문제가 아니며. 물리적 접근권만이 아니라 두려움없이 자신을 드러내며 이동할 수 없는 문제도 이동권의 문제로 고민해야 합니다. 성소수자, 이주민 협오와 차별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이고 정치의 책임입니다. 

 

자!! 이제 차별선동 그만하고 평등을 위해 국회는 일을 합시다. 더불어민주당 책임있게 앞장 서고 국민의 힘은 새 정부 출범 전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국회 논의에 참여하십시오. 

차별금지법 제정해서 저도 더 차별을 당당하게 말하며, 이동권 투쟁 하려고 합니다. 민폐될까 걱정하던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때까지 이곳에서 외칠 테니 우리를 무서워하십시오. 우리의 눈치를 보십시오. 일을 하십시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투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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