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20주년 맞이 오마이뉴스 연속기고⑤]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 장애여성공감 20주년 기념식 후기

장애여성공감은 창립 20주년을 맞아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라는 슬로건을 제시하며, 사회운동 단체로서의 정체성과 지향을 다시한번 가다듬고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장애인을 비롯해 시대마다 불화하는 존재들을 차별했던 ‘불구’라는 낙인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불구의 존재들이 살아야했던 폭력적인 운명을 거부하며 이제 ‘불구’의 뜻을 다시 만들려고 합니다. 사회와 국가는 온전하지 못한 기능, 스스로 구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하지만, 바로 거기에서 불구의 정치가 피어납니다. 우리는 이러한 처지에 있는 소수자들과 함께 정상성과 성장을 의심하고 의존과 연대의 의미를 다시 쓰고자 합니다.

[글 싣는 순서]

1.  낙태죄는 장애여성에게 어떤 의미인가?
2. 탈시설: 개인이 삭제된 삶에서 ‘탈’하기
3.  ‘장애인도 아닌, 여성도 아닌’ 폭력피해 장애여성은 어디로 가야 하나?
4.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 선언문
5.  20주년 행사 후기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 장애여성공감 20주년 기념식 후기 

 진은선(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장애여성공감 20주년 기념식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 수수님의 여는 공연

 장애여성공감은 20주년을 맞이하여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 라는 슬로건을 세우고 시대와 불화하는 존재들을 ‘불구’라고 낙인찍고 차별했던 역사를 기억하며 불구의 의미를 다시 정의했습니다. 시대와 불화한 이들의 삶 속에 ‘불’은 어떤 의미인지 질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불시착, 불응, 불청객, 불만, 불결 등 … ‘불구’의 존재들이 불화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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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을 준비하면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누구도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지하철역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발바닥 안내, 20주년 장소 내·외부의 휠체어 동선 확보, 수어통역사 배치, 점자·확대용 브로셔 제작,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성중립화장실 설치, 그리고 이 모든 편의에 대한 사전안내 등 당연하게 마련해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지 않나 긴장하며 준비했습니다. 물론 모든 편의를 갖추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아주 기본적이고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드디어 2월 2일, 장애여성공감의 20주년을 축하하며 연대의 마음을 나누고자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습니다. 첫 무대는 ‘장애여성극단 춤추는 허리와 장애여성학교와 오랫동안 호흡했던 수수님’의 콜라보 무대, <20년 동안, 안 해!> 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열었습니다. 찢어진 의상, 한껏 땋아 올린 머리, 소리치는 표정, 찡그린 얼굴, 박자에 맞춰 움직이는 몸들 모든 것이 살아 움직였습니다. 지난 20년 간 배우들이 ‘안 해!’라고 외치면서도 ‘나도 모르게’ 무대에 다시 서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선명한 몸짓과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표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공연 후에는 배복주(장애여성공감 대표) 님의 인사말이 이어졌습니다.

“장애여성공감이 지금까지 지켜온 것과 결별해왔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을 때 장애를 바라보는 동정적인 시선과 차별,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과 착취의 대상이 되는 것,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혐오를 온전히 받아야 하는 경험은 우리는 누구와 연대하고 함께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장애여성이 사회적으로 주류의 위치에 놓이지 못하지만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의 경험을 말하는 것을 지켜왔습니다. 장애여성의 삶에서 시작된 나의 경험들이 다양한 소수자의 경험과 교차되고, 이 경험들이 온전히 소통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연대의 원칙을 지켜나가기 위해 장애,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청소년 등에 향해 혐오하고 비하하고 폭력을 가하는 활동, 집단, 개인과는 단호하게 결별하겠습니다.”

장애여성공감 20주년 기념식 일곱빛깔 무지개 합창단, 지보이스의 공연

“친구야 이제 밖으로 나와 너와 나 세상을 향해 좀 더 당당히… (중략) 우리가 함께라면 힘들었던 어제 다 사라져요. 우리가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요. <일곱빛깔무지개, 우리가 함께라면> 중”

두 번째 무대는 ‘게이코러스 지보이스와 발달장애여성합창단 일곱빛깔무지개’의 <무지개빛 불량화음>이었습니다. 어울릴 듯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지보이스와 일곱빛깔무지개가 만났는데 조금 긴장했었던 리허설 때와는 달리 서로의 목소리를 차근차근 쌓아나가면서 화음을 만들었습니다. 단독 콘서트를 방불케 할 만큼 무대와 객석은 열정적이었고, 일곱빛깔무지개와 지보이스가 함께 서 있는 무대 그 자체만으로 빛이 났습니다.

무대를 보면서 ‘연대’란 이런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는 “왜?”라는 질문을 던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정체성들이 교차하고 나의 존재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무대들을 보면서 이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벅차기도 하고 울컥하는 감정들이 밀려왔습니다.  

20주년 축하 발언에는 박경석(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오매(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정욜(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띵동 대표), 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 미류(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님이 함께해주셨습니다. 발언을 통해 어디까지가 장애/비장애인이고, 어디까지가 퀴어/비퀴어인지, 그 경계는 어디이고 누가 규정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져주었습니다.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장애는 인정받을 수 없는 것, 최대한 숨겨야 하는 것이 되어버리면서 장애 이외의 것들은 완전히 지워지는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장애여성의 복잡하고 다양한 삶의 경험이 아닌 장애인 혹은 여성의 정체성으로 분리되었던 역사가 있으나, 우리는 그때보다 조금 변했다고 말합니다.

장애여성공감은 정상성에 끊임없이 도전해왔으며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연대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이 가결되고 혐오가 판을 치는 지금 이 시대에 장애여성공감 20주년은 시대와 불화하겠다고 정면으로 선언한 이들과 존재를 확인하고 연대하는 자리였습니다.

장애여성공감 20주년 기념식 20주년 선언문 낭독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말하기를 멈추지 않되, 우리의 차별과 억압만이 특별하고 중요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소수자들과 함께, 정상성과 보편을 의심하고 싸우는 이들과 함께 의존과 연대의 의미를 다시 쓰는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살아가고 의미 있게 존재할 것이다. <장애여성공감, 20주년 선언문 중>” 

우리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불구’로 무능력한 존재로 규정짓는 사회에 저항할 것이며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은 용인될 수 없음을 단호히 말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누구와 함께 연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의존과 연대의 의미를 다시 쓰고자 합니다.

단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개인을 판가름하는 것이 아닌 복잡하고 다양한 정체성들이 교차하는 한 개인의 삶의 맥락 안에서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기를, 누구도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장애여성공감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며 앞으로도 계속, 불구의 정치를 해나가겠습니다.

기사 링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0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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