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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을 알 수 없는 동선으로, 몸이동 

서지원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장애여성공감 춤추는허리 활동의 흔적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는(이하 춤허리) 한 해의 활동을 마치고 나면 다음을 계획하기 위한 평가를 치열하게 논의한다. 2023년도는 춤허리가 2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했다. 장애여성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알리기 위해 20년간 끝없는 시도와 도전을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설렘과 기대, 좌절, 같이 또는 혼자 견디면서 실패를 경험했다. 초창기엔 ‘장애여성의 목소리를 내고 알리자’는 목표로 큰 극장에서 공연을 하였고, 지원사업이 떨어졌을 땐 가진 것이 몸 밖에 없던 우린 몸을 거리로 내던지기도 했다. 배우들의 노동권을 고민하며 사회적 기업을 시도했고, 장애인인식교육으로 서울시 교육청과 협업하여 학교 현장에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교육연극으로 나가기도 하였다. 2018년도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작가로 초청 받아 ‘공적 공간에 침임, 진입’이란 목적으로 비엔날레에 참여하였다. 2022년도에는 춤허리의 내실을 더 점검하고, 배우들의 몸에 더 집중하기 위해 연습, 워크샵 등을 기록하여 기록집을 내기도 하였다. 

춤허리는 장애여성들이 주체적으로 활동을 고민하고, 기획하고, 기획을 몸으로 해볼 수 있게 기획팀을 만들었다. 비/장애여성 배우들과 스텝들이 좌충우돌을 견디면서 함께 몸으로 부딪친 춤허리 초창기 멤버인 활동가는 ‘실패하는 연습실’, ‘몸으로 하는 발제’ 등 담론을 만들어오면서 춤허리는 20주년을 맞이했다.

불필요한 자책

춤허리의 수많은 시도와 도전 속에는 배우들의 노동권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이러한 일환으로 끊임 없는 토론과 고민을 통해 배우들은 상근활동가로 전환했다. ‘자조’ 모임으로 기획팀이 더 적극적으로 공연을 보러 다니고, 집회현장을 다니고, 그것을 조직과 배우들에게 환류하고, 일상적 연습을 계획해서 배우들과 더 연습하고 토론하고 기록하는 춤허리만의 방식을 찾아가길 기대했다. ‘나는 예술가입니까?, 누가 예술가이고 무엇이 예술이냐?’ 춤허리가 사람들에게 했던 질문에서 활동을 찾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기획팀 멤버들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았다. ‘멋스러운 예술’로 보여주려 했고 ‘예술 활동’을 정형화 된 무대로 가둬오면서 우리의 기조는 흔들렸다. 

일상연습-배우회의 기획팀 운영 체제를 해체하고 춤허리 초창기 때처럼 공연할 때만 모여서 연습하고 참여하며 재점검하고 있다. 춤허리가 초창기로 돌아가서 공연을 할 때만 모이게 된 것이 나의 잘못 같았다. ‘내가 더 추동하지 않아서, 내가 멈춰있어서’ 이런 생각들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자책하기보다 몸을 썼다면,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무언가를 했다면, 동료가 없다는 말보다 동료로서 더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의하고 옆의 동료를 품었다면, 춤허리가 ‘자조’모임이란 것을 기억하고 또 기억했다면… 불필요한 자책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종이 안에 갇힌 몸

공감에는 최근 들어 구어소통이 어려운 회원분들이 오기 시작했다. 나 역시 언어장애가 있기 때문에 막연하게 이야기해오던 ‘몸으로 말하기, 몸으로 표현하기’란 ‘몸의 언어’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할지 생각하지는 못하였지만 나의 경험을 통해 회원들과 경험과 몸짓을 재구성하여 퍼포먼스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업계획서 작성을 시작으로 나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적고 또 적었다. 사람들을 보지 않은 채 마치 종이에 갇혀버린 것처럼 끊임없이 동료들에게 기획안을 밀어놓았다. 기획안엔 사람이 존재하지 않고 글자만 떠돌아다녔다. 떠돌아다니는 활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보이지 않았고, 불안한 마음에 더욱 글자들을 늘려갔다. 그렇게 춤허리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흐르는 시간을 멈추고 몸을 옮겨야 했다. 나를, 동료를, 주변을 직시하면서 이동해야 했다. 더는 적지 않았다. 미진님에게 펜을 입에 물 수 있게 종이를 감아달라고 했고 그 작업만 1시간이 걸렸다.  이후 일정들을 위해 상미님에게 책을 보자 했다. 10분 정도 같이 읽고 피곤하다고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혼자 책을 읽는데 풀벌레 소리가 리듬을 만들어내면서 고요하지만 리듬적 고요함이 느껴지는 그 때 그 때 할 수 있는 것을 몸을 써서 했다.

 

[사진 1] 서지원 활동가가 요가블록을 앞에 두고 몸을 숙이며 이완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현준영 

필라테스와 요가

‘춤추는허리의 이동(異動): 몸의 이동(移動, 동료와 함께 하는 이동(異同), 세계와 불화하는 이동(異同)으로 불구의 몸들과 연결되기’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노인, 이주민, 빈곤, 청소년 등 불구의 몸들은 사회에서 늘 함께 살아가지만 사회는 이들이 피해서사를 말해야 주목한다. 불구의 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애써야 한다. 춤허리의 이동(異動)은 공간을 이동하여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만남, 나의 몸과의 만남 그리고 무대가 아닌 다른 곳과의(장애와 자연의 만남) 만남을 기대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게 요가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나 역시 같은 의문을 가지고 요가를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던 요가의 장면들… 과연 장애여성들은 요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처음 우리가 헬스장에서 운동법을 낯설어했던 것처럼 낯설였을까? 아님 자신만의 운동법을 찾아간 것처럼 요가도 스스로 방식을 찾고 다른 동료와의 움직임을 찾아가려고 했을까? 이런 궁금증도 있었다. 

서울 요가 워크숍을 진행한 헤이그라운드란 공간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은 아니었다. 헬스장, 운동하는 장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그 공간에 없고 장애를 가진 우리 스스로도 그런 공적 공간에 들어가는 것이 낯설었다. 바디스캔을 할 때 쿠션과 블럭을 이용했다. 어디에 도구를 대야지 몸의 균형이 맞춰지는지 탐색하는 시간이었다. 오랜 춤허리 동료 진희의 쉼을 위한 침대나 도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절실히 와닿았다. 장애여성의 몸의 이완은 단순히 몸에 힘을 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탐구하란 의미이다. 뼈와 근육의 조화 그리고 뻗침의 정도와 강도, 대사를 할 때 어떻게 호흡할지 턱과 어깨가 먼저 움직여야 입으로 소리가 나오는 것을 계속 탐구하고 발견하는 몸으로 실천하는 훈련의 연속이다. 요가는 자신의 몸과 공간과 시간에 집중해야 하는데 조용한 공간은 나에게는 참 낯설었다. 조용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말하지만 막상 조용한 온전히 독립적일 시간이 주어지니 너무 어색했다. 집중해야 할거 같은데 자꾸 주변을 보게 되고 시선이 분산되었다. 생각해보면 일상을 생활하는 집이란 공간에선 나의 몸에 맞는 세팅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핑계는 많았다. 좁은 공간, 좌식생활에 익숙한 몸, 변화를 거부하는 몸, 아이들에게 방을 내어주는 몸 정작 나의 몸에 맞는 물건이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동은 단지 제주와 서울을 오가는 등의 물리적 공간의 의미를 넘는다. 동료와 몸으로 부딪치며 오른쪽 팔에 둥그런 도구를 끼워달라고 요청하고, 때론 서로의 몸이 도구가 된다. 오른쪽 팔에 요가 블록을 끼고 머리에 요가블럭으로 높이를 조절하는 몸이동 작업은 낯설지만 일상에서 해보지 않았던 서로의 몸의 감각을 느끼는 시간이다. 

 

[사진 2] 제주 이동프로젝트 중의 모습. 서지원, 진성선 활동가가 정원에서 대본을 읽고, 쓰고 있다. 사진 출처 : 현준영 

바다로 몸을 이동

제주 서귀포에서 미진 나영이 모래 위를 걷는 모습은 마치 춤 같았다. 나영은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양팔을 벌리고 걸었고, 미진은 지팡이로 모래를 짚으며 걸었다. 성선과 나는 경사로가 없어지는 데까지 가보자고 했다. 휠체어 바퀴가 모래에 빠지지 않도록 왼쪽, 오른쪽 요리 조리 바퀴를 이동시켰다. 바퀴가 빠질 땐 비장애여성 스텝 동료들이 움직였다. 바다는 항상 나의 몸을 수용적이게 했었다. 모래로 바다 끝까지 혼자 가기 어려우니 늘 누군가에겐 도움이 필요했던 바다.

돌이켜보면 그럼에도 나는 바다를 향해 갔고, 바닷물에 들어갔다. 제주 바다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도움의 대상’이 아닌 움직임을 향한 주체로 존재했다. 도움의 대상일 때는 바다에 어떻게 들어갈 건지, 어느 방향을 향해 들어갈건지, 어느 정도 깊이의 물속을 들어갈지 나의 생각과 움직임을 표현할 시간도 없이 무조건 주변이 내 몸을 끌고 갔다. 나는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미진과 바다를 산책하며 얼마나 이동할지, 바다와 나의 몸이 거리를 얼마만큼 둘건지 나의 몸과 바다를 두고 바라보고 관계 맺는 몸은 가만히 있어도 이동하고 흐르는 주체이다. 1인극도 바다를 주제로 했다. 장애여성이 자연과 만났을 때 어디까지 몸을 자연과 어울려져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자연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성향일 수도 있고 서울에서만 살아서 그럴 수도 있는데 자연하면 불편함이 먼저 떠오른다. 휠체어가 가지 못하는 곳, 턱과 계단이 맞는 곳이란 납작한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더 깊이 고민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나만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자연으로 이동하여 고정관념과 직면해보고 싶었다. 

글자가 아닌 몸

활동지원이 제도화되면서 장애여성배우들은 비장애 동료에게 활동지원을 잘 요청하지 않거나 몸을 움직이지 않았고 ‘몸으로 관계맺는 서로돌봄을 실천하지 않는 몸을 되돌아게 되었다. 또는  일상에서 활동지원이 필요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어떤 토론들을 할 때 토론의 쟁점보다 감정이 앞설 때도 있었다. 몸이동은 네가지 주제로 구성되었고 각 극마다 컨셉이 있었다. 그리고 시도했던 것은 배우의 몸들이 배경이 되어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건 배경으로서만 움직임을 해서는 순간 순간 극에 의미를 담아내기는 어렵다  각 극마다 배우의 역사와 경험이 담겨져 있고 각 사람의 역사와 경험을 알아야 감정이 담기는 배경이 된다. 이것은 서로돌봄을 실천하는데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몸을 아는 것, 서로의 상황을 아는 것, 서로의 감정을 알고 느끼는 것 참으로 이것이 쉽지 않다고 느꼈다. 6~7년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몸이 밀접하게 닿을 때 어색해하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우리는 서로를 알고 싶어할까? 배경으로 움직임 자체가 어려웠다기보다 서로의 몸에 관심이 없어서 호흡을 맞추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대본은 글자가 아닌 몸으로 외우기였다. 발달장애여성배우는 활자로 된 글자에 익숙하지 않아 대사를 읽기 어려웠다. 그래서 큰 종이에 자신의 대사를 적어 벽에 붙이고, 순서대로 소리내어, 반복해서 읽었다. 몸을 움직이며 장면을 이해하고 감정을 기억한다. 그렇게 대사와 장면을 외웠다. 이 과정에서 발달장애여성배우는 혼자가 아니었다. 비장애여성활동가가 함께 벽에 붙혀있는 종이 대사를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읽고 영상을 찍고 같이 호흡하며 발달장애여성과의 관계를 맺었다. 물론 매번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연습이 없는 날 영상통화로 한 번 맞춰보기로 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때론 곁에 있는 동료를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이 ’불안과 불편함’으로 드러나기로 했다.     

활동가와 배우 경계를 넘나들 때

연극과 활동은 정말 닮아있다. 서로가 마주보고 있어도, 하고자 하는 목표가 같지 않으면 움직일 수가 없고  움직인다 해도 지향이 다르면 일방적인 움직임이 될 수도 있다. 연극도 활동도 정말 어렵다. 자기의 고민 없이는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몸은 정직하고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다. 배우와 활동가는 한 끗 차이다. 배우의 타이틀에 취해 ‘멋짐의 허공을 쫓을 것인가, 일상에 만나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갈 것인가…‘나는 어떨까? 춤허리에서 성실하고 똑똑한 사람이 나라고 자부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나이든 몸은 똑똑하지도 대사를 전처럼 외우지 못한다. 작년부터 함께한 나영의 성실함과 문제제기에 긴장도 느낀다. 그럼에도 춤허리를 계속 하고 싶다”는 나영의 말이 너무 반가웠다. 춤허리를 사유화한다는 문제제기에서도 내가 지키고 싶은 춤허리는 장애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가장 중요한 현장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곳에서 사회를 배웠듯 다른 장애여성들과 더 만나고 싶다. 

장애문화예술은 춤허리 초창기보다 휠씬 그 영역이 많아지고 공연, 전시, 미디어, 유투브 등등 접할 수 있는 방식들도 다양해졌다. 그렇지만 구어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듣기가 어렵다. 탈시설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탈시설 이후의 삶의 과정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시설 밖으로 나왔다고 끝이 아니라 삶은 계속 이어진다. 그 삶의 과정들을 이 현장에서 말하고 표현하고 몸을 써서 다른 표현방법을 찾아가는 것,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것… ‘완벽한 세팅보다 관계를 맺고 싶다’ 장애여성배우들이 말한 것처럼 이 현장이 있어야 할 이유이다. 물론 어렵고 죽을만큼 힘든 곳이지만 더 다양한 장애여성, 그리고 함께 활동하는 비장애여성의 교차하는 경험들을 드러내고 알려내는 이 현장을 지키기 위해 또 2024년을 준비해나간다. 

 

춤추는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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