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만나는 탈시설 여름캠프: 탈시설에 필요한 건 실패로 함께 배워 갈 동료
정주희(장애여성공감)
[사진 1] <몸으로 만나는 탈시설 여름캠프> 댄스파티 사진. 바다 영상과 무드등이 공간 뒷 편으로 켜져있다. 반차별투쟁단 만세팀이 진행하고 있다. 활동가, 참여자들이 댄스파티 진행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7월 10일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발달장애인의 맞춤형 돌봄 지원 방안 제도 개선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 권익위는 장애인거주시설의 중증장애인,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인이 다수임에도 장애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탈시설이 맹목적으로 이뤄져 인권침해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립을 하기에 장애가 중하니, 이들에게는 다양화, 현대화한 시설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윤석열 정부와 서울시의 입장이며, 실제 정책과 예산으로 강행되고 있다.¹ 10월 23일 탈시설 발달장애인 박초현(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님은 국정감사에서 시설이 장애인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시설 입소의 동의를 구하지 않음에도 탈시설에는 엄격한 잣대를 이야기하는 문제를 짚었다. 독립이 가능한 몸은 누구일까. 그 기준은 누가 판단하는 것일까? 차이를 가진 우리가 일상을 살아낼 힘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의사표현은 말과 글로만 이뤄지는 걸까. 누구나 비언어적 소통을 한다는 당위적인 말이 아니라 몸짓으로, 표정으로, 접촉으로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까. 그래서 공감은 3년간 만나온 거주시설 해맑은마음터의 당사자들과 강화로 떠나기로 했다, 몸으로 만나보자!
지원만이 아닌 함께하는 과정임을 알기
1년만의 만나는 반가운 사람들과 처음 가는 캠프라니 설레면서도 떨렸다. 이번 캠프는 활동가들이 직접 활동지원을 함께 하기로 했다. 담당자나 특정 한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돌봄을 말하고 돌볼 수있으려면 우리부터 시작하잔 마음이었다. 나의 짝꿍은 A님, 즐겁게 잘 하고 싶은 마음에 악수도 하고, 휠체어 책상을 두드리며 인사했다. 첫날은 2박 3일 간 지낼 숙소를 돌아보고 환영의 댄스파티까지 달렸다. 드디어 저녁식사, 사전에 가장 고심했던 시간인 만큼 바베큐장에 준비된 메뉴만 여러 개, 활동가들이 분주히 준비한 식사에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A님에게 드릴 음식을 푸고 자르고 소스도 담았다. 나의 온신경과 집중은 A님을 향했다. 음식의 크기와 속도는 괜찮을까? 다음엔 새우, 아니 소세지? 미세한 표정 변화가 음식에 대한 호불호일까 머릿속엔 온통 A님에 대한 지원으로 A님만 주시하던 그때 동료가 말했다. “주희님도 음식 퍼요. 먹으면서 해요.” 동료가 건네는 말에 몸을 돌렸고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맛을 새롭게 조합해 요리하는 동료, 불판 앞에 앉아 분주히 굽는 동료, 쓴 약을 먹기 위해 갈지 부술지 방법을 골몰하다가 크게 넣은 약에 입이 써 동료를 째려보는 B님에 다들 사과하며 웃는 모습. 나는 A님에게 가장 집중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사실 A님도 계속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는걸 깨달았다. 누구도 틈을 낼 수 없을 것만 같던 한 사람에게 맞춰진 순간은 그렇게 깨졌다. 그제야 나도, A님도 서로만이 아니라 다른 동료들과 부대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불안은 전해진다, 먼저 모여 밥부터 먹자
다음 날 아침 동료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하루를 시작하기 앞서 우리 식사부터 챙기자는 제안이다. 참여자들이 잠들어계신 아침, 한 명씩 교대로 찾아간 방에는 따뜻한 빵과 수프 냄새로 온기가 돌았다. 일찍부터 준비한 선배 동료가 건넨 아침에 힘이 돌았다. 사실 어제 나름대로 서로 애썼으나 활동지원이 잘 되지 않아 고생했던 밤이었다.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는 활동지원에 익숙치도 서로의 몸에 익숙하지도 않지 않은가. 어제 그러한 우리를 먼저 느꼈을까. 선배 동료는 같이 참여자분들과 아침 준비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르게 일어난 B님이 솜이불에 얼굴을 비비고 쉬고 있을 때, 우린 B님 곁에 걸터앉았다. 선배 동료는 인사를 나눈 후 B님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침에 서로의 몸은 어느 정도 단단한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힘은 어떤지를 몸으로 알아갔다. 20년간 장애여성 동료들과 몸을 맞춰온 경험 속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은 ‘내 상태를 말하기, 상대방의 속도에 맞추기, 말보다는 몸으로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였다. 목욕을 하기 위해 준비된 매트 위로 몸을 눕히고, 샤워기 물의 냉기에 눈짓과 자세, 떨림으로 느끼며 빠르게 같이 움직였다. B님이 내게 기댈 때 내가 힘을 주기 편한 곳을 찾아야한단 걸 배웠다. B님의 고개가 꺾이거나 긴장하지 않을 자세를 잡았다. 팔로만 지지했을 땐 떨리던 내 몸이 어깨로 받을 때 안정적이었다. 나와 B님이 서로 몸을 지지하면, 다른 동료가 빠르게 머리부터 몸 얼굴을 씻겼다. 몸의 강직과 이완을 느끼고, 접힌 살 사이를 닦고 헹구어 낸다. 미끄러지지 않게 매트에 있는 거품도 쓸어내며 수건으로 B님의 몸과 우리 발을 닦아냈다. 세안, 탈의만 했던 지난 밤보다 짧은 시간에 마쳤다. 어깨와 배에 느껴지던 아린 느낌도 덜했다. 이렇게, 저렇게 긴 말이 아니라 서로의 몸을 집중하며 해낼 때 신뢰도 느껴졌다.
아침 준비를 마치고 쉬는 시간 모두가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내 몸과 마음의 감정이 돌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는 걸 느꼈다. 존중이라, 집중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내 불안이었다. A님에게 몰두했지만, 좁혀진 시야로 다른 사람들의 동선, 순서를 체크하기 어렵게 했다. 습관처럼 나오는 관행적인 동의의 말이 오히려 주저하는 순간을 만들고, 돌보는 사람과 합을 맞추기 어렵게 했다. 만나온 시간동안 식사를 보조하고, 침을 닦고, 기저귀를 갈고, 버리는 걸 배웠지만 내 몸을 알고 같이 하는 사람들과 맞추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와 서로를, 전체를 보아야 우리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아침을 먼저 먹길 제안한 동료도, 몸으로 직접 보인 B님과 동료의 마음도 느껴졌다. 나를 포함한 주변을 돌아볼, 서로에게 기댈 몸으로 만나는 과정이라 생각할 때 걱정보다 같이 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들었다.
다른 몸을 가진 우리, 나 역시 당신의 어깨에 기대어
“주희님이 먼저 편하게 말해야 저도 편해질 수 있어요.”
B님, C님의 활동지원을 할 때 같이 보조한 동료가 건넨 말이다. 나부터 긴장을 놓고 나를 더 말하자. 내 눈빛을 보고 먼저 움직이려던 동료의 몸과 주저하지 않고 솔직히 말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장애여성 동료들은 곁에서 살펴보며 강직 이완되는 몸의 감각을 말했다. 지금 자세가 몸 어떤 부위에 강직과 이완이 오게 하는지, 돌보는 사람이 몸의 방향과 정도를 어떻게 잡아야 편한지를 조언했다. 동료들의 말에 따라 느껴지는 B님, C님과 나의 몸. 앞으로 안을 때 감싸 힘을 주던 팔, 강직이 오는 몸에 버티는 힘, 자세에 맞춰 주고 푸는 몸의 긴장과 떨림, 돌아가는 눈동자가 나를 마주했을 때 표정으로 전달되는 감정. 그제야 내 몸의 떨림과 힘도 느껴졌다. 애써 버티거나 주저하며 멈추는 게 아니라 서로를 느끼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어려웠지만 서로가 있어 든든했다.
아쉬운 사흘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조금 서로 합이 맞춰진다는 기대가 들 때 우리의 활동은 끝났지만, 더 이후를 기대할 수 있었다. 나 혼자의 몫도, 돌봄 받는 이의 장애 정도에 따른 문제도 아니었다. 동료들과 만난 분들과 함께라면 더 할 수 있을 것이고, 더 하고 싶은 것들이 떠올랐다.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 시간이 필요하다. 기대어야만 살아갈 수 있고, 안전할 수 있다. 내년의 만남은 더 길게, 더 깊게 몸으로 만나고 싶다.
¹ 6월 웹소식지>이슈> 인권의 후퇴를 저지하는 돌봄 투쟁, 서로 돌볼 권리를 지지하는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