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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몸의 경험 함께하기, 거리로 나가자!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활동가 낙지

 

몸으로 만나기, 존중하는 관계 맺기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은 거주시설연계사업 <거리로 나가자> 현장에서 장애인 거주시설 해맑은마음터에 사는 중증⋅중복장애 당사자들을 만나 관계 맺고 있다. 올 10월부터 체험홈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이뤄진 만남은 현재 9회차 일정의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장애여성공감에서는 ‘몸으로 만나다’라는 말을 참 많이 쓴다. 듣기만 했을 때는 잘 와닿지 않았는데 이번 현장에서 이 의미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자주 바닥에 눕고, 엎드리고, 때로는 기고, 달렸다. <거리로 나가자>에서 관계 맺는 당사자들은 장애 특성상 구어 소통이 어렵다. 활동 초반에는 무언가 말을 건네면 대답을 들을 수 없어서 종종 무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말로 응답하지 않아도 그들이 분명 듣고 있으며 우리가 소통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시간을 함께 보내고 관계가 쌓이면서 시나브로 달라지는 몸의 표현들이 있었다. 눈 맞춤, 활동가를 좇는 시선과 표정의 변화, 가까워진 거리,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는 걸음 같은 것들이 그랬다.

 

직접 활보하며 몸을 부대낄 수밖에 없었고 그럴 때마다 무엇이 존중하는 관계 맺기인지 스스로에게 여러 번 되물었다. 깍듯한 존댓말? 동의를 구한 스킨십? 존중은 경어와 동의를 구하는 행위만으로 한정할 수 없었다. 웃음이 곧 즐거움을 뜻하지 않았고 찡그림이 꼭 불편함만은 아니었다. 매 순간 ‘동의’를 구하는 일도 입말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내게 익숙한 소통 방식에서 벗어나 서로의 언어를 알아 가기, 더 정확히는 만들어 가기. ‘몸으로 만나기’는 때로는 ‘무응답’의 무안을 견디는 일 아닐까.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리는 일 말이다.

 

시설과는 다른 관계

주 활동 공간인 체험홈은 방 3개가 있는 평범한 가정집이다. 우리가 만나는 당사자들은 이곳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다 시설로 돌아간다. 체험홈에서 소파나 침대를 좋아하는 분들이 참 많았다. 나만의 공간은 물론 편히 쉴 수 있는 물리적 토대가 없는 시설 환경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예 활동 시간 내내 소파나 매트리스 위에서 보낸 적도 있다. 내 몸이 편안한 곳, 머물고 싶은 곳에서 마음껏 뭉개는 것도 독립생활이 아닐까.

 

우리는 특히 몸과 섹슈얼리티에 집중했다. 이것은 거창한 선언이 아닌 일상의 자그마한 실천이었다. 사적인 공간을 만들고, 아무 데서나 내 몸을 드러내는 게 당연하지 않음을 말하려 했다. 공간 분리가 여의치 않으면 수건이나 가림막을 사용해 시선을 분리하고, 화장실에 드나들거나 목욕할 때 몸을 다 가리는 타월을 사용하고, 혼자 있는 공간에 들어갈 때는 노크를 했다. 보조하는 사람의 편의에 맞추다 보면 자주 잊게 되는 원칙이었다. 한 번은 신변 보조할 때 베란다문을 닫고 커튼 치는 걸 깜박했었는데, 한 당사자 분이 대신 문을 닫아 주었다. 그제서야 활동가가 문을 제대로 닫고 커튼을 쳤다. 문을 닫는 행동이 우연이었을 수도 있지만 활동가가 놓쳤던 부분을 짚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내 몸 보이지 않을 권리’, 성적 권리는 이런 일상 속에서 만들어지고 지지된다. 지원자의 관점이 어떤 식으로 상호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순간이다. 

 

가을 내내 우리는 해 본 적 없는 일들을 하나둘 함께했다. 기저귀 대신 팬티 입고 변기에 앉아 보기, 라면 먹을 때 젓가락 쓰기, 소파든 맨바닥이든 어디든 내 몸이 편안한 공간 찾아보기, 하루 종일 방에서 혼자 있는 시간 보내기. 과식해서 배앓이도 하고 입술이 파래질 만큼 물놀이하다가 감기도 걸려 보고. 이렇게 원하는 걸 선택하고 때로는 실패하는 경험을 같이했다. 10가지 시도해서 1가지만 성공하더라도 혹은 10가지 다 실패하더라도 계속했다. 시도에 의의가 있다는 말은 막연한 긍정이 아니었다. 몸의 경험은 우선 해 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래야 내 몸이 적어도 이 10가지는 선호하지 않는구나, 하는 감각을 경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활동 만들기

10월 13일 첫 만남. 한정된 시간 안에 나름대로 준비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기대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들은 온몸으로 ‘당신이 내 장애를 아느냐’고 묻고 있었다(는 인상을 나는 받았다). 초기 기획, 당일 아침에 세웠던 계획, 수정한 계획, 그대로 진행된 게 거의 없었다. 같이 활보했던 한 선생님은 “계획대로 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계획대로 된다는 건 당사자들과 상호 작용이 없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신발이 발에 안 맞으면 신발을 사러 가고, 얼굴에 생채기가 있으면 함께 약국에 가 연고를 사고, 같이 밥 먹으며 내 몸에 편한 숟가락을 사용해 보고. 그렇게 일상에서 호흡하며 시설 밖의 하루를 만들어 갔다.

 

이 시간은 활동가인 나의 독립생활 연습이기도 했다. 밥물을 알맞게 잡고, 설거지를 하고, 약을 챙겨 먹고, 날씨에 맞게 옷차림하고. 이런 사소한 일상의 돌봄은 단 시간에 터득할 수 없었다. 나를 돌보고 남을 돌보고, 돌봄을 주고받은 경험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시간이자 기술이다. 나를 돌볼 줄 알아야 남을 돌볼 수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 현장이다. <거리로 나가자>가 끝나가는 시점이지만 나는 여전히 장애를 모른다. 그렇지만 계속 알고 싶은 마음, 그들을 만나 일상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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