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공감 춤추는허리 “빛나는” 공연을 만들기까지
서지원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계속 도전하는 공간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이하 춤허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매년 한곳에 머물러있기보다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한다. 장애여성의 노동을 고민해오며 2022년 배우들이 상근 활동가로 활동을 전환했다. 단지 배우들이 상근 활동가로 전환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장애인의 삶과 노동을 단편적으로, 단순화시켜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장애여성공감(이하 공감)에서는 장애여성의 삶에 전반적인 역사와 맥락을 이야기하며 노동을 고민하고 시도하였다. 아침에 출근하여 야채와 과일을 손질하는 것, 연습일지를 컴퓨터 문서로 작업하는 것이 아닌 손글씨로 작업하는 것, 매일 2시에서 4시 일상연습으로 몸을 탐색하는 것, 신문과 기사들을 보는 것 “이런 것들이 어떻게 업무이며 노동이냐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되물어야 했다. “사회에서 말하는 노동은 무엇인지” 컴퓨터를 잘 해야 하고 문서화를 하는 것으로 규정지어놓은 노동을 해야 노동이 되는 것이냐고… 여기에서 분명하게 말해야 할 것이 있다. “규정된 노동을 해야 노동이냐” 질문은 비단 사회만이 아니라 배우 스스로에게도 던져야 할 질문들이다.
변형되는 몸 게을러지다
나는 장애여성 배우로서 나의 몸을 끊임없이 탐색한다. 배우로서 몸에 대해 탐구하는 것도 있지만 보조가 필요한 몸이어서 몸의 변화들을 더 민감하고 예민하게 바라보고 탐색하고 다르게 움직여보기도 하면서 움직임을 개발하고 기록한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도구가 ‘몸으로 표현하고 글로 쓰는 것’ 뿐 이어서 더 몸을 예민하게 보고 기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올 초에 신우신염으로 많이 아팠다. 신우신염은 열이 많이 나서 아프다고 하던데 나에겐 열따위는 별문제가 아니었다. 하루에 몇 번이고 화장실을 가야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이슈였고 신유신염에 이어 척추측만증도 나에게 다가왔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보조를 받는 자세 역시 변형되어서 어떤 식으로 보조를 받는 것이 보조를 받는 나도 그리고 보조를 하는 활동지원사님도 편한 자세인가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나는 통증 뒤에 숨어버렸다. 통증은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다. 더는 몸을 살펴보지 않았고 탐구나 연구 기록따위 하지 않았다. 그런 나의 몸은 나와 활동하는 춤허리 배우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통증이란 단어로만 배우들과 대화가 오고 가고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로써 아무것도 기록하지 못하였다. 수많은 병원을 다니고 한의원을 다니면서의 경험들은 그저 물을 쏟아내리듯이 흘려보냈다. 고통 배틀은 마치 게으름 배틀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종종 배우들에게 이런 문제제기를 하곤 했다. ”왜 서지원이 추동하지 않으면 춤추는허리의 일상연습이 돌아가지 않죠, 왜 무엇도 내게 제안하거나, 나를 추동하지 않으냐“고 답답함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정작 내 스스로한테는 그 무엇도 질문과 채찍질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실패와 마주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춤허리 배우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어떤 동료였을까? 어떤 동료이고 싶었을까? 몇가지 질문들이 생각난다. 나는 춤허리에서 동료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고 입밖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를 들은 한 동료가 내게 물었다. ”지원님이 생각하고 그리는 동료의 상이 무엇이냐“고. 그 질문을 받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동료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2022년 나는상근활동가로서 춤허리 담당자로 역할을 맡았다. 처음에는 긴장이 나의 온몸을 가득채웠다. 긴장은 무엇을 위한 긴장이었을까? 나의 관심은 배우들이었을까? 사업이 잘못될까 하는 염려였을까? 동료 이야기하다가 왜 갑자기 담당자, 사업 이야기를 하는지 의문이 생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동료, 긴장, 활동, 사업비, 공연’ 이렇게 각각 하나의 면만으로 이야기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걸 활동을 하면 할수록 알게 되고 깨닫게 된다. 춤허리는 공연을 하기위해 공연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고 활동을 하기위해 공연을 장치로 삼는다. 그렇다면 2022년은 과연 어떠했는가? 춤허리의 목표와 기조대로 장애인문화예술운동으로 공연과 무대가 장치로 작용했을까? 아님 공연과 무대가 배우들이 주체적이지 못하게 만드는 벽으로 작용되었을까? 이 질문을 배우 스스로 배제한 채 공연과 무대에 올라간다면 춤허리는 어떠한 이야기를 전달해야할지 목표를 잃어가고 ‘박수소리와 조명, 예술가’란 허울좋은 멋만 남게 될 것이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
2019년 탈시설 이야기를 담았던 <빛나는>을 이번에 재구성하여 공연하기로 했다. 오랜 공감 회원이자 일곱빛깔무지개합창단, 반가워만세팀, 발달장애여성 활동가연습으로 활동했던 발달장애여성과 실제로 시설밖으로 탈출한 탈시설 당사자, 그리고 상근활동가를 다시 시작하는 뇌병변장애여성이 객원배우로 참여했다. 공연연습은 안일함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빛나는 공연을 한번 해봤다는 안일함’과 ‘서로의 책임에 대해 누군가 하겠지, 나는 잘 모른다’는 마음이 공존하였다.어느새 그 안일함과 잘 모른단 말은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시키고 있었다. 춤허리 기획팀은 연습을 미루고 핑계를 대었다. ”아직 배역이 확실하지 않아, 아직 연출이 정해지지 않았어“ 란 말로 때론 회피하거나 때론 외면했던 순간들이 계속되었고, 배우들의 초조함과 불안감은 점점 커져갔다. 춤허리에서 공연을 준비할 때 누군가 만들어주는 움직임을 하진 않는다. 배우 스스로 대본을 보고 자신의 몸에 맞는 움직임을 찾아오고 함께 보고 합의하고 토론으로 하나 하나 장면을 만들어 간다. 그래서 춤허리에서 액션과리액션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런데 기획팀 장애여성 둘의 액션과 리액션이 안되는 상황이 반복되기 일쑤였다. 수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여성의 움직임엔 한계가 있어 그 역할을 장애가 덜 심한 장애여성이 움직여보고 그것을 가지고 배우들도 따라해보고 다르게도 해보면서 장면만들기를 했어야 했는데 정말이지 잘되지 않았다. 답답함에 ”내가 움직임에 한계가 있으니 같이 하는 사람이 움직여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파트너십이 뭐냐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반면 나에게 ”기획이 없어져 움직임이 어렵다”는 피드백이 돌아오기도 하였다. 공연날짜는 다가오고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현실의 답답함과 게으름이 무기력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다시 사람들의 눈치 보는 ”눈치마녀“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점점 ”내가 리더 자격이 없어“, “나는 기획력이 없어”, “내게 토론하고 함께 할 장애여성 동료가 부재해“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 ‘쓸모없음, 무능력화’ 시키기 바빴다.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어졌다. 춤허리는 공연을 화려하게 전문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냥 하루 하루를 살며 무언가를 행동으로 말로 해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내가 사라지고 싶었던 이유는 단지 공연이 다가오는데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책도 있었지만 그보다 외부적으로 저항하고 또 저항했던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내부적으로도 소리없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이 지구상에서 한톨에 먼지도 남기지 않고 그저 없어져서 사라지고 싶었다. 너무 슬프고 분하고 억울하기도 하였다.
허상에 믿음
연습 때 나는 배우들에게 종종 이런 말들을 했다. ”걱정마요. 믿어요. 잘 될거예요“ 하루는 한 배우가 되물었다. “도대체 누구를 어떻게 믿어야 하나요?” 어쩌면 “믿어라 잘 할거라” 말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망치로 한 대를 맞은 것 같았다. 한발 뒤로 물러나있던 성선님은 기획팀을 깨워주었다. 함께 책임지자며 공동연출을 맡았다.
장애여성들의 공동연출은 삐뚤빼뚤 다시금 시작됐다. 우리는 아침마다 연습에 대한 전략과 기조를 세우는 회의를 진행했다. 주말에 나오기도 했고 저녁 늦게까지 연습을 하고 서툴지만 외부스텝들과 회의도 진행하였다. 성선님이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고 미진님이 대본으로 적고 나는 움직이고 (최근에 나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면서 주체적 움직임이 더 가능해진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여전히 셋이 합이 잘 맞지 않은 부분도 있다. 하나의 장면을 만들 때 의견이 맞지 않아 의견을 맞추는 시간을 소요할 때도 있었다. 미진님이 코로나 확진으로 부재할 때도 우린 멈추지 않았다. 성선님이 종일 고민하고 말하면 나는 그 의도를 파악해 움직이고 여러번 반복하고 또 했다. 참 아이러니하게 전혀 힘들지가 않았다. 우리가 하는 몸짓과 말, 그림이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하고자 했던 기조와 목표가 같으니 더는 두렵지 않았다. 믿음이란 허상이 아니라 실체가 보여야 가능해지고 그 실체는 함께 토론하면서 갈등하고 때론 질투와 괴로움과 두려움을 겪어내는 것이다. “누군가 하겠지” 뒤로 물러나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해보자. 그리고 또 같이 하자” 실제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
지금 이시간
지금 이 시간에도 춤허리는 공연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다만 달라진 지점이 있다. 이제 무조건 함께이고 싶지 않다. 춤허리는 장애인문화’예술’을 하는 곳이 아니다. 장애인문화예술’운동’을 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물어볼 것이다. 이 둘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솔직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춤허리는 위기에 도달해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20년 전 10년 전 그저 장애여성의 경험과 장애를 가진 몸으로만 무대에 오르기에는 이제 한계가 있다. 장애인문화예술은 더욱 다체로워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노동현장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이 노동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장애여성 배우 스스로가 자신의 노동에 대해 고민하고 설명해야 한다. 그 설명은 언어가 아니어도 된다. 몸짓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뭐든 가능해져야 한다. 그동안 함께 활동한 진희님이 배우들 말을 해석하고 의미화해주기도 했다. 어쩌면 배우들은 그것에 안주하기도 했다. 나는 변형되는 몸과 함께 사는 반려견과 반려묘에 대한 기록을 남겨보려고 한다. 그냥 기록이기보다 나와 닮은 점 다른 점을 기록하여 나의 몸짓으로 나의 운동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이렇듯 각자의 목표가 모여서 춤허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해야 춤허리가 우물 속 개구리가 아닌 세상 밖으로 뻗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