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성소수자 인권포럼] 소수자의 경험을 교차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퀴어문화축제’

이 글은 지난 1월 25일 부터 27일까지 진행된 성소수자 인권포럼 중 <연대 단체들의 퀴어문화축제 참여와 변화> 세션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소수자의 경험을 교차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퀴어문화축제

 

진은선(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서로의 경험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찾는 것

 

장애여성공감은 매년 퀴어문화축제에 연대하고 있다. 2014년에는 ‘장애와 퀴어의 사랑’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하였으며, 2017년부터는 장애여성공감의 회원들이 퀴어문화축제에서 부스를 맡아 활동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2017년, 2018년에는 각각 장애여성공감의 자조모임인 ‘2030 장애여성 섹슈얼리티모임 레드립’(이하 ‘레드립’)과 발달장애여성 반차별 투쟁단 ‘반가워 만세팀’(이하 ‘만세팀’)이 퀴어문화축제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 고민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서 활동을 만들어왔는데 이는 기존에 공감이 연대하던 방식에서 좀 더 회원들을 중심으로 활동을 옮기는 기점이 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레드립이 퀴어문화축제의 활동을 기획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콤플렉스’라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장애를 가진 나의 몸이 타인에게 드러나는 경험 또는 나를 설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몸을 드러내야 했던 경험에 집중했고, 내 장애가 콤플렉스가 되는 순간들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때 주요하게 나왔던 이야기는 장애가 있는 몸이 콤플렉스가 되는 대다수의 원인은 소위 ‘아름다운 몸’에 대한 기준에서 벗어난 장애여성의 몸을 평가하는 ‘타인’에 의해서였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운’ 기준에서 벗어난 몸들이 자연스레 보여 지는 사회가 된다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에 대한 생각 또한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하였다. 그래서 장애여성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을 고민하던 중에 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 퀴어문화축제의 활동을 계획하게 되었는데 논의를 지속하면서 퀴어문화축제의 역사와 퀴어문화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지고 퀴어와 장애여성의 차별과 억압의 경험이 연결되어 있는 지점을 찾는 과정들이 있었다.

 

이에 레드립 안에서 주요쟁점이었던 ‘몸’을 주제로 논의를 이어가면서 공통적으로 이야기된 부분은 장애여성의 몸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규정되고 있는지, 더 나아가 이 사회에서 ‘정상적이지 않은 몸’은 누구이고 어떤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풀어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의 존재, 장애여성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초반 논의를 더 넓혀 ‘정상성’ 중심의 사회에서 배제되는 몸들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다. 레드립은 <어쩌면 우리 비슷할지도 몰라>라는 슬로건을 통해 ‘나의 존재가 가시화되거나 혹은 가시화되지 않는 상황’에 주목하면서 퀴어, 장애여성의 경험이 만나는 지점들을 찾기 시작했고, 퀴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나를 설명하거나 증명해야 하는 상황들에 대한 불편함을 메시지에 함께 담아내고자 했다. 아래는 장애여성과 퀴어의 교차적인 경험을 토대로 진행했던 캠페인 내용의 일부이다. 화장실, 옷가게 등의 공간에서 나의 존재가 잘못되었다고 인식되는 것뿐만 아니라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치부되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장애와 퀴어의 교차적인 경험을 발견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 화장실

화장실에 갈 때 마다 ‘여자냐’는 질문을 받는 머리가 짧은 퀴어 여성

지정성별 또는 본인이 정체화 하는 성별 그 어느 곳의 화장실을 가더라도 타인의 시선을 받는 트랜스퀴어

화장실을 찾는 것이 쉽지 않거나 화장실 진입 시, 타인의 시선을 한 눈에 받게 되는 장애여성

 

○ 옷가게

‘표준화 된 몸’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기 어려운 장애여성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젠더표현에 어긋나는 옷과 소품을 고를 경우, 옷가게 점원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는 퀴어

 

○ 파트너와의 동행

파트너와 함께할 때, 연인으로 가시화되지 않고 친구로만 해석되는 퀴어

– 파트너와 함께 동행 하는 상황에서 파트너는 연인이 아니라 친구 혹은 도와주는 사람으로만 인식되는 장애여성

 

○ 혐오의 대상

– “너 장애인 같아”, “병신년이 갔습니다!”

– “너 게이 같아” “너 레즈야?”

 

○ 치료의 대상

– 기도 열심히 하면 걸을 수 있다는 기적을 강요받는 장애여성

– 기도 열심히 하면 시스젠더 이성애자가 될 수 있고 동성애는 고칠 수 있다고 강요받는 퀴

 

 

18년도에는 만세팀이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가하는 사람들에게 ‘차별 꺼져’, ‘함부로 반말하지 마시오’, ‘이상하게 쳐다보지 마시오’ 라는 메시지를 발달장애여성의 언어로 알리는 활동을 진행했다. 발달장애여성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차별과 혐오의 말들에 대항하기 위한 활동을 고민하였는데 퀴어문화축제에서 차별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직접 쓰고 알리는 활동을 시작했다면 이후 발달장애여성들이 차별을 맞닥뜨리는, 내가 살고 있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은 피켓을 들어 침묵시위를 하고, 지역의 현수막을 게시하는 등의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처럼 퀴어문화축제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준비가 되어있는 참여자들이 모인 안전하고 다양성이 확보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비일상적이지만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일상적인 공간으로 활동을 확장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연대의 의미를 확장하기

 

장애여성공감이 퀴어문화축제에 연대하는 것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교차하는 활동의 연장선으로서 그 의미가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공감의 회원들이 레드립, 만세팀 활동을 통해 정상성 중심의 사회에서 소수자의 경험은 어떻게 통제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내가 경험하는 차별의 경험이 단지 장애여성의 경험만이 아니라 소수자의 경험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문제의식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퀴어문화축제의 활동을 기획하면서 장애인, 여성, 퀴어의 정체성이 각각 분리되어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 ‘소수자’의 정체성으로 서로의 경험을 연결 지을 수 있었고 공감의 회원이 중심이 된 이 활동을 통해서 연대의 의미를 확장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퀴어문화축제는 이 고민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성소수자 대중을 만나고, 동료를 만들어나가는 것의 의미가 있다. 공감은 일상적인 활동 안에서 회원들과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 내용이 쌓여왔던 부분이 있지만 작년 한 해 동안 발달장애여성들이 지보이스와 만나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또 관계를 만드는 시간을 통해서 서로에 대한 고민이 훨씬 더 깊어질 수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사실 누구나 그렇듯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에 대한 고민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서로의 존재를 상상할 수 있으려면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관계들이 쌓여야 비로소 서로의 경험이 교차할 수 있기에 퀴어문화축제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와 고민을 함께할 수 있는 동료를 만들어갈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다.

 

현장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은 “장애여성과 퀴어의 경험이 맞닿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부적절한 존재로 느껴지는 경험이 장애여성의 경험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차별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교회에서 자신이 치료의 대상이 되었던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장애여성들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더 듣고 싶어 하기도 했다. 사실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메시지에 공감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경험했던 강력했던 느낌은 ‘나의 경험에서 시작된 고민은 서로의 존재를 궁금해 하고 질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대’가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는 일은 소수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경험이 어떻게 만나는 지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과정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넓혀 가다보면 장애여성이 퀴어문화축제에 ‘연대’하는 것의 의미는 이 투쟁을 함께 하는 것을 넘어 퀴어장애여성의 존재를 상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연대’가 되지 않지 않을까.

 

 

모두를 위한 접근성을 고민하는 것

17년도 퀴어문화축제 당시 서울시청에서 명동으로 이어지는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할 때 광장에 턱이 있어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여성들이 광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생겼고, 특히 혐오세력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나갈 수 있는 통로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당시 이런 상황에서 장애여성공감의 활동가, 회원, 그리고 장애여성 참가자들은 전동휠체어, 목발 등의 보장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도로, 건물의 턱은 이동에 큰 제약이 있었다. 접근성이 확보되지 않는 것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보조기기를 이용하거나, 유모차를 이용하는 사람 등 모두가 해당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공감은 17년도부터 퀴어문화축제 내 편의시설 접근성 향상에 대한 논의를 제안했다. 따라서 화장실, 부스, 무대 등 휠체어를 이용하는 참여자를 고려한 편의시설 및 동선을 확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는 인원이 많고 복잡한 현장에서 장애인이 축제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고민들을 기획단과 함께 가져왔던 과정이 있었다.

 

이 논의들을 통해 퀴어문화축제의 편의시설 접근성에 대한 사전 안내와 축제 내의 물리적 세팅을 바꾸는 등의 변화들은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물론 접근성과 관련된 부분은 앞으로도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접근성뿐만 아니라 축제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과 이에 대한 고민과 필요성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할 목표라고 생각한다. 비장애인 중심의 세팅이 보편화되어있는 기존의 축제가 아닌 소수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더 많은 ‘연대’의 방법을 찾는 퀴어문화축제는 앞으로 다양한 장애유형에 대한 접근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어와 문화에 대한 접근성을 고려하는 것 등 모두를 위한 접근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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