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상담활동 이슈와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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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상담활동 이슈와 입장]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이하 상담소)는 2021년 활동 20주년을 맞이하여 [장애여성 반성폭력운동, 항거불능에 맞서 반차별을 외치다]라는 주제로 장애여성 반성폭력 운동의 쟁점과 방향을 알린 바 있다. 장애여성 성폭력 피해자(이하 피해자)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장애로 인한 무능함을 항거불능의 조건으로 증명하길 요구받고, 국가 제도는 피해자의 필요와 욕구가 정해진 기준에 부합되어야 지원하는 문제의식을 피력하였다. 장애여성 반성폭력 운동의 쟁점과 문제의식은 2022년에도 여전히 유효했기에 이슈와 입장으로 활동의 과제를 공유하고자 한다. 

이슈 1. ‘항거불능’과 ‘성적자기결정권 보호’에 숨겨진 시설사회 공모체계 강화 

예년에 비해 2022년 상담소 활동에서 피해자 증인출석이 많았다. 2021년 12월 말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2018헌바524)[1]로 인해 증인출석이 증가한 것은 아닌지 추정해 본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피해자가 재판받는 현실이 여지없이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경험하지 않은 것을 실제 경험한 것처럼 진술할 가능성, 피해망상, 제3자에 의한 암시, 진술오염, 왜곡 가능성 등 정신적 장애(발달장애 및 정신질환으로 발생하는 장애. 장애인복지법상 정의)에 대한 편견에 기반한 질문들을 직접적으로 듣게 된다.

심지어 무죄 입증을 위한 논리로서 ‘정상적인 남성과 지적장애여성이 합의에 의한 관계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은 보호가 아니라 장애여성에 대한 권리침해’라는 주장이 재판에서 나오고 있다. 이러한 논리가 다른 재판부 무죄판결의 근거로서 동일하게 통용되고 있는 점도 확인되었다. 해당 판결문은 ‘지능지수나 사회연령 등이 특정 수치에 미달한다는 사유만으로 형식적・기계적으로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능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쉽게 인정할 경우 자칫 성년에 도달한 지적장애인과 합의를 거쳐 성관계에 이른 상황에서도 반대편 당사자의 법적 지위가 극히 불안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되고, 이는 해당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충실하게 보호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적시하고 있다. 

최근 장애여성의 항거불능 상태가 장애만이 아닌 ‘사회적 조건’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피해자의 장애정도에만 천착하여 판결하고 있는 현실에서 다소 유의미한 판결처럼 보일 수 있으나 피해자의 교육 및 사회생활 경험 정도, 경제력 등은 사회적 조건의 ‘열악함’만으로 언급되었을 뿐이다. 심지어 고등법원 원심 판결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자기의 물리적・실력적 지배하에 두었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판단하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위와 같은 사법부의 판단을 피의자는 적극 악용하여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수사법적 과정에서 보장된 법적 지위를 안정적으로 부여받게 된다. 따라서 피해자는 장애로 인해 명확한 사리판단을 못하는, 의사소통 능력, 문제해결 능력이 부족하다는 무능을 철저하게 입증하지 못하면 성적자기결정권 보호라는 논리로 인해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은 불가능해진다. 유죄판결이라 하더라도 장애무능을 입증하는 방식이라면 피해자에 대한 정당한 권리보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회적 조건은 개인의 열악함이 아닌 장애여성 삶에서의 구조적 성차별, 불평등한 권력관계로 적극 해석되어야 하고 권리침해의 원인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법부는 ‘물리적・실력적 지배하에 두었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점’이라고 부정하고 있다. 성폭력 범죄의 보호법익인 성적자기결정권 보장은 비장애남성・가부장제와 정상신체중심주의가 만든  위계의 해체가능성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그러나 사법부는 항거불능과 성적자기결정권 보호라는 양 극단의 왜곡과 모순속에 숨어 장애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 뿐만 아니라 연결된 수많은 사회적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며 공모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슈 2. ‘사례 속 지원 대상자’가 아닌 동료시민으로서의 관계맺기 필요성 직면하기

2022년 정신적 장애가 있는 성폭력 피해여성 지원을 위한 간담회, 포럼, 통합사례회의 등 논의 자리에 참석 제안이 많았고, 상담소의 역할을 고민하며 참여했다. 해당 자리에서의 주요 사례는 성폭력, 성매매, 금전피해, 폭력 등 복합적이고 교차적인 인권침해를 경험하는  지적장애여성과 정신장애여성이다. 그만큼 피해자 지원현장에서 장애여성 사례가 주요 이슈라는 방증이다. 정신적 장애여성의 폭력 피해에 대한 전문화된 지원체계의 부재를 공통되게 언급하며 더 전문적이고, 효과적인 지원을 위한 지역 내 연계자원 활용 및 다각적인 협력과 강화, 법·제도적 개선방안을 논의한다. 상담소는 여러 자리에 참여하면서 해당 과정은 피해자의 주체적-통합적인 권리 보장의 과정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장애여성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전문성’이란 무엇인가 등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정신적 장애 피해자 지원 시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현장에서 자주 언급된다. 그리고 이 어려움의 주 원인으로 피해자의 장애가 지목되고 소위 ‘전문적’ 경험이 많은 기관 연계는 해결방안으로 등장한다. 진정 의사소통이 어렵고 장애가 그 원인일까? 모든 인간이 그렇듯 장애여성 피해자는 분명한 자기 욕구를 바탕으로 의사 표현을 한다. 다만 장애 및 개별 상황에 따라 다양한 표현방법 및 언어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왜 상호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울까? 지원주체들은 장애여성과의 상호적인 의사소통을 기반한  관계맺기를  ‘전문성’이라는 미명하에 피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결국 비장애인 중심의 관계와 소통을 뛰어넘기 두려운 것은 아닌지 질문해야 한다. 

지원자와 피해자의 관계맺기는 갈등, 토론, 제안, 협상 등  매순간  시행착오와 실패의 경험이 켜켜이 쌓여가는 과정이다. 장애에 대한 그 치열한 관계맺음에 뛰어들고 직면해야 하는 것이지 ‘전문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관계의 부재로 인해 의사소통이 어렵고,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로 호명되는 수많은 장애여성 피해자들이 기존의 지원제도와 비장애인 중심의 태도와 소통방식에 불화하는 이유다. 장애가 원인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장애여성 피해자와 의사소통에 실패했다는 것을 직시하고 인정해야 한다. 

공감 상담소 역시 이러한 관계맺기 시도는 쉽지 않고 시행착오와 실패의 반복을 통해 배워간다. 정신/지적 중복장애여성이 정신병원 입퇴소를 반복하는, 본인의 삶에서 체득한 정해진 선택지 외에는 다른 대안을 상상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이 사회는 어떠한 성찰과 숙고를 해야 할까. 주거가 불안정한 장애여성 피해자의 주거지원을 위한 과정에 수없이 듣는 ‘장애여성이 어떻게 혼자 살 수 있냐’는 질문의 한계는 어떠한 변화를 모색해야 할까. 피해자도 스스로를 피해자로만 병리화하지 않기 위해, 혼자 사는 것이 아닌 의존과 상호돌봄이 가능한 구조와 인식을 만들기 위해 지원기관들은 무엇을 해야할까. 피해자, 피해로만 관계맺는 것 역시 시설사회의 맥락과 연결된다. 피해자는 지원대상으로서의 ‘사례’가 아닌 함께 실패하고 갈등해야 하는 ‘동료시민’이다. 장애여성공감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주장하는 동료시민적 관계맺기가 한국사회 구석구석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다. 피해자가 다른 삶의 전략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변 관계맺기의 방식과 질문이 달라져야 시작된다. 다양한 지원기관이 체계화・구조화된 지원강화가 아닌 다른 관계경험이 쌓여야 장애여성과 지원기관에 상호성을 기반한 역동과 힘이 가능하다.  

장애여성에 대한 통합적 지원과 관점의 핵심은 장애를 문제발생 원인이나 취약성으로 지목하지 않고 젠더적 관점으로 이해해 나가기 위한 고민을 하는 것이다. 통합적 권리보장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사회적으로 재정의해야 하는지. 통합성을 복합적, 교차적 관점과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지, 평등한 동료시민적 관계와 돌봄의 가능성을 사회적으로 확보해 나가기 위한  질문과 본질적인 토론을 반성폭력 운동현장은 함께 성찰하며 실천해야 한다.


[1] 성폭력처벌법 제30조 1항 ‘성폭력범죄의 피해자가 19세 미만이거나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경우에는 피해자의 진술 내용과 조사 과정을 비디오녹화기 등 영상물 녹화장치로 촬영·보존해야 한다’고 규정. 같은 조 6항 ‘1항에 따라 촬영한 영상물에 수록된 피해자 진술은 공판준비기일 또는 공판기일에 피해자나 조사 과정에 동석했던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 또는 진술조력인의 진술에 의해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된 경우에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음. 헌법재판소는 위 조항 중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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