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팔레스타인연대QK48
2026 퀴어팔레스타인연대의달 성명
집단학살 못 멈춘 좆같은 자긍심의 달
팔레스타인의 조건이 인간의 조건이다
집단학살에 반대한다는 선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팔레스타인 퀴어 단체 알카우스(alQaws)의 외침을 새긴다. 집단학살과 식민지배, 아파르트헤이트를 자행하면서 감히 퀴어 자긍심을 입에 올리는 이스라엘에 반대한다. 이에 올해도 자긍심의 달을 ‘퀴어팔레스타인 연대의 달’로 고쳐 쓴다. 집단학살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일회적 면책을 위해서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퀴어 그리고 퀴어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기 위해서 이 선언에 동참할 것을 한국과 전 세계의 퀴어들, 활동가들, 앨라이들에게 요청한다.
식민주의는 비인간화를 통해 착취하고 죽여도 되는 인종이라는 허구를 생산해 왔다. 식민주의 폭력을 수용하는 세상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곧 식민주의의 공범자로 산다는 것이다.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권력의 출처를 묻지 않고 인간화를 종용하는 것은 곧 계급적·이성애중심적·인종적·비장애적 편향만이 승인한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스스로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집단학살 주범들을 인간화하고 팔레스타인을 비인간화하는 데에 퀴어의 권리를 동원하지 말라. 전 세계 퀴어들이 팔레스타인에 연대해 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퀴어는 좁디좁은 인간의 범주로부터 추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편입되기를 거부해 왔다. 우리는 우리를 비인간화하는 구조를 추문한다. 보편성의 허구를 비판하길 넘어 보편을 다시 만든다. 팔레스타인의 시인이자 인권운동가인 모함메드 엘쿠르드가 말하듯 팔레스타인의 조건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팔레스타인 퀴어는 스스로를 구한다
팔레스타인 퀴어는 스스로를 구한다. 이들은 퀴어로서 팔레스타인인이기를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팔레스타인의 운명과 퀴어의 운명이 비인간화라는 낙인을 매개로 포개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실질적으로 이해해 왔다. 팔레스타인인으로 살아내는 일이 퀴어한 실천임을 보여내고 종국에 탈식민과 퀴어 해방이 대립하지 않음을 체화해 왔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배타적민족주의와 시온주의의 폐지와 더불어, 비장애 백인 중심의 이성애 가부장제와 섹슈얼리티 규범을 폐지하는 일이 서로의 내용을 구성하는 해방의 목표임을 설파하며 투쟁해 왔다.
자유주의적 야만화가 팔레스타인을 퀴어화하고 불구로 만든다. 그 속에서 팔레스타인 퀴어는 존재 불가능한 형상이 되기 쉽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은 퀴어로 존재함으로써 저항해 왔다. 팔레스타인은 낙인으로서의 퀴어성을 뒤집어, 주어지지 않아 만들어야만 하는 미래를 맞이할 존재 양식으로서 퀴어성을 고안해 나갔다.
그렇기에 우리는 팔레스타인 퀴어의 경험에 대해, 욕구에 대해 이들이 그리는 해방의 미래를 짐작하지 않는다. 단정하지 않으며 넘겨짚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팔레스타인 퀴어의 이야기를 찾아 읽는다. 듣는다. 새기고 기억한다. 팔레스타인 퀴어의 기록, 팔레스타인 퀴어의 발언, 팔레스타인 퀴어의 성명, 팔레스타인 퀴어의 활동을 목격하고 기록하며 성실한 학습자가 된다. 열렬한 번역자가 된다.
팔레스타인 퀴어는 팔레스타인 바깥에서만 퀴어로 존재할 수 있다는 흔한 믿음을 부정한다. 대대로 살아온 팔레스타인 땅의 토착민 퀴어이고자 한다. 퀴어로서 땅과의 유대를 지키고자 한다. 팔레스타인 퀴어는 나크바(النَّكْبَة, the Nakba)가 봉쇄한 퀴어한 미래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빼앗긴 시간에 대해서 오래도록 분노해 왔다. 빼앗긴 땅을 되찾고 되찾은 땅에서 온전히 자결권을 행사할 해방 팔레스타인을 꿈꾸고 있다.
퀴어는 저항의 실천이지 자긍심의 기념비가 아니다
지금 벌어지는 홀로코스트와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 퀴어로서, 집단학살이 멈추지 않은 채 삼 년째 자긍심의 달을 맞이하며 좆같음을 느낀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자지구 집단학살에 반대하면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기로 마음먹은 수많은 퀴어들이 있다. 매년 팔레스타인 퀴어 지지 성명을 쓰면서 깨닫는다. 이 시대 팔레스타인 해방의 연대자가 된다는 것은 실시간으로 부당하게 죽어가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임을 말이다. 동시에 이들이 한 번도 말하기를 멈춘 적이 없다는 것 또한 깨닫는다. 먼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이들이 굶주림에 몸과 마음, 정신이 서서히 해체되어 가고 있다고 토로하면서도 저항하고 있음을 똑바로 보는 것이다. 국제법이 팔레스타인을 예외로 삼고 세상의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을 자각하며, 한국 땅에 살아가면서 집단학살에 공모하도록 짜인 세계를 인식한다. 침묵 속에서 일상이 돌아가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익숙한 패턴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투자가 일어나는 것에 분노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외치고 몸부림친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한 다양한 연대 방법 가운데 우리는 퀴어성을 재정의하고 저항의 무기로 삼는다. 정상성에 반대하고 체제와 불화하며 생존하고 저항하는 실천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자 팔레스타인을 예외로 삼는 정상질서에 대해 퀴어의 이름으로 반대할 이유를 제공한다.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해버린 세계 속에서도 우리는 존엄하게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해방의 열망들과 연대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정상질서를 균열내고 깨부수기 위한 언어를 벼리며, 동지들을 만나고 조직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실천은 우리를 더 퀴어하게 한다. 퀴어로 살아온 우리는 이제 팔레스타인인이 되어가기로 한다.
지금, 여기의 변화를 실천하며 시온주의를 해체한다
누군가는 여전히 외칠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너무 멀다! 누군가는 의심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선언을 감히 해도 되는가? 누군가는 불평한다. 퀴어로 살기도 어려운데 팔레스타인인까지 되어야 하나? 팔레스타인을 존재하지 않는 땅이라 날조하고 수탈하는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러한 경계와 갈라치기를 반긴다. 우리가 멀다고 느낄수록 제국주의·인종주의·식민주의 옹호자들은 자본의 이동을 압축시키며 팔레스타인을 투기와 착취와 수탈의 앞마당으로 만든다. 그들은 다국적 기업과 군수 자본을 팔레스타인으로 초대하면서 전 세계 민중이 팔레스타인과 영원히 멀길 바란다.
실제는 이렇다. 시온주의가 집단학살(genocide), 생태학살(ecocide), 교육학살(scholasticide)을 자행하는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그 세상이다. 우리는 분리된 세상에 놓여 있지 않다. 그렇기에 시온주의가 해체된 세상은 지금 여기로부터 만들어지고 또한 여기를 바꾼다. 시온주의가 해체된 세상은 무기를 실어 나르는 고체 연료를 만들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노동자들이 산재로 사망하지 않는 세상이다. 학살과 파괴의 무기를 개발하고 팔아치운 이익을 문화예술에 투자하고 전쟁을 방조하는 동시에 1세계 예술을 향유하려는 퐁피두 한화 서울과 같은 아트워싱이 더는 작동할 수 없는 세상이다. 시온주의가 해체된 세상은 팔레스타인 퀴어들이 귀환하는 과정에서 마련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세계이며, 이곳에 횡행하는 ‘나중에’의 정치를 분쇄할 세상이다. 시온주의가 해체된 세상은 제국주의·인종주의·식민주의·자본주의가 더는 영원해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시온주의가 해체된 세상에서 우리는 식민적 감각 질서로부터 벗어나 다른 관계를 만들고 다른 욕망을 가꾸며 지금과는 다른 종으로 변태할 것이다. 요르단강부터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은 해방한다.
팔레스타인 사람과 더불어 헤엄치기 위해서
팔레스타인 앞바다에서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누려야 할 파도가 친다. 팔레스타인 사람과 더불어 헤엄쳐야 할 무수한 생명이 산다. 가자지구의 퀴어는 봉쇄된 점령지에서 바다가 자신을 위로한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자국의 공기업이 그 바다를 약탈하게 두지 않겠다. 시온주의적 자원 수탈과 제국주의적 화석 연료 채굴, 신자유주의적 기후 부정의 강화에 공모하기를 당장 중단하도록 한국석유공사를 압박하기를 멈추지 않겠다. 팔레스타인 인민도, 이곳 한국의 인민도, 저마다 기이한 뭇 생명도 파괴되지 않고 버려지지 않고 존귀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오래 지속된 나크바에 고통받는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생존하고, 생존함으로써 저항하며, 생존을 위해 저항해왔다. 팔레스타인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세계사에 기입할 주인공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살아서 공부하고 살아서 연구해야 한다. 살아서 취재하고 그림 그리며 영화를 만들고 노래 부를 수 있어야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이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팔레스타인 지식 생산과 예술 창작의 물적 토대를 파괴하는 시온주의와의 학술협력을 거부하는 이유이다.
일상에서의 실천과 투쟁이 팔레스타인 해방에 닿아 있다.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 연결되어 있다. 하여 우리는 식민국가 점령국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을 죽이고 팔레스타인 땅을 망가뜨리고 팔레스타인 물을 오염시켜 만든 과일과 그 농축액을 구매하고 섭취할 수 없다.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희귀병 아기를 위한 특수분유를 생산해 온 매일유업과 같은 기업이 팔레스타인 민족 절멸을 위해 어린이를 표적 살해하고 분유 반입을 금지해 아기들을 굶겨 죽이는 이스라엘과 교역한다는 것은 지극한 자가당착이다. 계몽과 인간화의 허위 프로파간다로 가득한 이스라엘의 문화 콘텐츠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온주의 체제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팔레스타인 인민과 팔레스타인 땅의 자유로운 유대를 훼손하는 데 일조해 온 한국 정부를 규탄한다. 팔레스타인 식민지배 군사점령 집단학살에 가담해 온 이 땅의 기업들에게 실질적 윤리 경영과 최소한의 약속으로서의 국제법 준수를 강력히 요구한다.
사회 재생산의 혁명을 위하여
학살에 돈을 대지 말라. 재생산을 파괴하는 생산을 중단하라. 우리는 사라지라는 주문에 맞서 서로를 살도록 지키려고 애쓰는 퀴어들, 팔레스타인 민족을 사라지게 하려는 시온주의 철폐에 전심전력을 다하여 함께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학살과 파괴에 연루되고 분리와 차별의 계급화와 인종화를 영속하게 만드는 시장과 사회구조, 그들이 지속해 온 투자와 개발, 이익의 풍요와 편리에 우리가 적지 않게 영향받아 왔음을 자각하는 일이다. 타인을 착취하고 불구화하고 말살하며 영토를 넓히고 부를 쌓고자 하는 더러운 욕망에 자유롭지 않음을 인지하는 일이다.
하여 이 투쟁은 지금 우리가 어쩔 수 없다고 쉽게 자조하고 체념하는 일을 비판적으로 돌아볼 것을 요청한다.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빼앗긴 터전에 돌아와 미래를 열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갈 것을 요청한다. 그 과정에서 기억되지 못하고 의미부여되지 못하며 애도되지 못한 이들을 살피며 이들을 다시 이야기하고, 절멸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요청한다.
이것은 죽음 정치에 대항하는 사회 재생산의 혁명이자 혁명적인 재생산의 시작이다. 우리는 정의롭고 혁명적인 재생산이 기록과 기억의 반식민·탈식민 정치와 분리불가함을 안다. 스스로 자신을 설명하고 판단할 수 있는 권리와 맞물려 있음을 안다. 그렇게 우리는 폭력과 모욕에 맞서 싸워온 퀴어 투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온전히 살아내기를 결의하는 6월의 한가운데서 모욕당한 자긍심을 다시 쓰자고 외친다. 지금 여기를 바꿔나가며, 이 땅과 팔레스타인 땅에서 마땅히 살아남아야 할 존재들이 살아서 자신을 세상에 새기도록 투쟁과 연대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6년 퀴어팔레스타인 연대의 달을 보내며
2026년 6월 18일
퀴어팔레스타인연대QK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