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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투표, 연습 그 이상의 의미
 
노다혜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4월 11일에는 두 번째 회원 정기모임이 진행되었습니다. 가벼운 마음, 가벼운 손으로 오는 평소 회원 모임의 기조와는 다르게 이 날은 모임 전부터 회원 분들에게 몇 가지 준비물을 챙겨 오시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요. 준비물은 바로 신분증과 선거 공보물! 준비물로 미루어봤을 때, 두 번째 회원모임 때는 어떤 활동이 이루어졌을지 대충 짐작이 가시나요? 회원 이끔이팀이 무려 한 달 동안이나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장기 프로젝트(?)’! 이 날은 4월 13일 총선을 앞두고 회원 분들과 함께 선거의 의미를 나누고, 모의투표를 통해 선거를 연습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거의 의미: 나의 목소리를 대신해줄 사람 찾기
본격적인 진행에 앞서 회원 분들과 함께 선거 경험과 선거의 목적, 선거의 중요성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국회의원들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묻는 활동가의 질문에 “매일 싸우는 사람들이요!”라는 회원 분들의 대답에 한바탕 떠들썩한 웃음으로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국회의원은 우리를 대표해서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목소리가 담긴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꼭 선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4월 13일 총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선거의 의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나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후보를 찾는 일이겠지요. 선거의 의미를 알아본 다음에는 자신이 속한 지역구에 어떤 후보들이 출마했는지, 각 후보들은 어떤 공약을 내세우고 있는지, 회원들과 활동가들이 함께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날 모임에서 가장 중요했던 준비물인 선거 공보물을 펼쳐놓고 어떤 사람이 우리의 목소리를 대신해줄 수 있을지 포스터를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강아지를 키우는 어떤 회원님은 공약으로 동물복지를 내세운 정당 포스터를 보시고 반색을 하시기도 하고, 휠체어 그림이 있는 포스터를 보고서 이 정당은 장애인을 위해서 일 해줄 것 같다고 말씀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지역구의 후보들이 비슷비슷한 공약들을 이야기할 때는 그동안 공약을 더 많이 실천해온 사람이 누구인지, 말로만 좋은 공약을 내세우는 것은 아닌지 깐깐하게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실전보다 더 떨리는 선거 예행연습
꼼꼼한 후보검증(?)을 거치고 난 다음에는 선거 예행연습이 진행되었습니다. 투표가 익숙하지 않은 회원 분들을 위해 투표용지에 도장을 정확하게 찍는 연습부터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일부 회원 분들은 처음에는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는 일부터 어려워 하셨지만 몇 번 연습을 하고나니 자신감을 찾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도장 찍기 연습을 마친 후에는 실제 모의투표가 진행되었는데요. 모의투표라고 해서 허술하게 진행될 것이란 생각은 No! 신분증을 제출하고 명부를 확인한 다음, 투표용지를 받고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고 투표함에 넣는 것까지 진행되어 묘한 긴장감이 돌기도 하는 등 예행연습이지만 실제 선거를 방불케 했습니다. 기표를 마친 후에는, ‘실제로는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며 투표함을 열어 기표를 옳게 하셨는지 확인하고, 다시 연습해보는 과정까지 꼼꼼하게 거쳤습니다. 투표 연습뿐만 아니라 춤추는 허리의 명콤비, 미진님과 화영님의 연기를 통해 부정선거의 사례와 대응방법까지 알아보며 선거준비를 단단히 마쳤습니다. 우리의 참정권을 제대로 행사하기로 약속하며 두 번째 회원 정기모임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절차로서의 참정권을 넘어서기
이 날 회원 정기모임에서는 참정권 중에서도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발달장애 회원 분들의 선거 경험이 적기도 하고, 경험이 있다하더라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벤트가 아니다보니 많은 어려움을 표현하셨기 때문입니다. 편의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여전히 많은 지체장애인들이 참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것처럼, 발달장애인들 역시 선거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비발달장애 중심의 용어 사용은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가로막는 문턱 중에 하나입니다.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논의가 대두되면서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발달장애 유권자를 위해 일련의 노력들을 해왔습니다. 발달장애 유권자를 위한 선거 체험과 그림 책자가 그 예시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들은 존재하고, 선관위가 생각하는 참정권의 정의는 매우 협소한 것 같습니다. 일부 지역 선관위에서는 발달장애 유권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모의투표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설 입소 대상자 혹은 복지관 이용자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개인 단위로는 참여하기가 다소 어려워 보였고, 홍보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발달장애유권자를 위한 안내 리플렛 역시 그림이 조금 많아졌을 뿐 여전히 어려운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어 과연 해당 리플렛이 발달장애인들의 이해를 온전히 도울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선관위에서 선거 체험을 진행하고, 그림이 조금 더 많은 리플렛을 제공했다고 해서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투표가 어떤 방식, 어떤 절차로 진행되는지 잘 설명하는 일 역시 중요합니다. 발달장애인들에게는 선거절차가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소중한 한 표가 그 분들의 의사와는 다르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거의 과정은 절차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거는 절차 이전에 개인의 가치 판단이 개입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호하는 가치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기
조금은 생뚱맞지만, 고급 레스토랑을 처음 방문해 어려운 외국어가 가득한 메뉴판을 마주했을 때의 경험을 떠올려봅시다. 생소한 이름의 메뉴판을 보며 어떤 메뉴가 대체 무슨 음식인지 짐작초차 어려운 사람에게 포크는 왼손에 쥐고, 나이프는 오른손에 쥐고, 안쪽에 있는 식기부터 차례로 사용하고…이러한 식사예절을 아무리 설명한들 맛있는 메뉴를 고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이 메뉴는 무슨 재료를 사용했는지, 어떤 맛이 나는지, 양은 어느 정도 되는지…그 손님의 취향을 물으며 메뉴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것이 맛있는 식사를 고르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발달장애인의 참정권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뽑고 싶은지, 절대 뽑고 싶지 않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공약을 원하는지, 어떤 세상을 바라는지… 이런 이야기부터 차근차근 시작한 다음 선거하는 방법과 절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마치 식당에서 식사법보다는 메뉴판을 먼저 설명해주는 것처럼 말이에요.
 
익숙함이 주는 기쁨
회원모임으로부터 열흘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회원 한 분과 함께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회원님께서 어떤 현수막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반가운 목소리로 외치셨습니다.
“저 현수막, 저번에 우리 모임 때 이야기했던 거예요.”
회원님이 가리키신 것은 어느 정당의 현수막이었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눈 지도 벌써 열흘이 넘었는데도 회원님께서는 정당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 정당이 어떤 공약을 내세웠는지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익숙한 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이전에는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던 것일수록 그 기쁨은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회원모임을 상기하며 해당 정당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회원님의 표정은 정말 밝았습니다.
그 날의 회원님의 모습을 한 번의 회원 모임이 가져다주는 성과라고 못 박아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익숙함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중요합니다. 기쁨이 쌓이다보면 자신감이 되고, 자신감이 쌓이게 되면 수월함이 생길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낯선 경험을 하게 될 때에도 예전만큼 불안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낯선 것이 익숙해지기까지의 과정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부단한 노력들이 뒤따르는 일이겠지요. 하지만 이 노력은 우리들만의 일은 아닙니다. 낯설고 어려운 세상이 우리들에게 익숙해질 수 있도록, 세상도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익숙함이 주는 기쁨을 우리들이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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