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 정책 톺아보기: 우리 삶의 자취는 희박한 장애여성 정책
유진아 (장애여성공감)
[사진 1] 2022년 5월 16일 차별금지법 즉각 제정 촉구 국회 앞 피켓팅 모습. 피켓에 ‘국회는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국회의 책무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차별금지법 없이 투표 없다’ 문구가 적혀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이다. 출퇴근 길 곳곳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새삼 반가이 맞이하고 고개를 숙이는, 익숙하지만 낯선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장애여성공감이 위치한 천호동 지역구에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들은 GTX-D 고덕역 추진 및 조기착공(동일), 9호선 4단계 및 강일동 연장사업 조기 개통, 강동구청 제2청사(경제청사) 신축, 비즈밸리 첨단 사업 활성화 등을 내세우며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 지하철 개통과 연장은 너무나 주요한 공약으로 내세워지지만, 교통약자의편의이동증진법을 근거로 한 대중교통 접근성과 이동권 확보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저출산을 주제로 교육, 양육지원금 등의 이야기는 있지만 성과재생산권리보장기본법 제정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하남-강동을 넘나들며 장애인콜택시를 기다리는 장애여성의 출퇴근길과 연애-피임시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발달장애여성의 연애사는 여전히 선거와는 먼 일이다.
개별 지역구의 공약 이외에도 거대양당은 각기 민생, 저출생, 기후위기, 국민 안전과 일가족 모두 행복, 양육, 서민 등의 새로 희망을 내세우며 국민의 소중한 한 표를 요청하고 있지만 아리송하다. 정치와 우리의 일상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모두 체감하고 있지만 들려오는 정당의 공약, 정책들은 우리의 일상 그리고 운동과 어떻게 연결될지 낙관하기 어렵다.
2023년 4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시행 15년을 맞아 ‘개정할 결심’을 전면에 띄우며 법안의 개정을 이야기 하고 있다. 2007년도부터 여러 이름으로 국회 제정의 벽을 넘지 못했던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치열한 활동을 요하고 있다. 선거 D-day을 앞둔 촉박한 시간속에서 난립하는 공약과 정책들은 첨예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작은 언급조차 없다. 첨예한 주제, 갈등을 요할 수 있는 등을 이유로 한 표를 계산하는 치열한 주판알 위에서 우리의 삶을 둘러싼 정책은 쉽게 묵인된다. 익숙한 광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정치, 법과 정책의 근간을 만드는 총선에서 우리의 삶은 어떤 무게가 있는가, 혹은 어떤 무게가 있어야 하는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가구소득’으로 묶여진 장벽들
[사진 2] 2019년1월 31일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1박 2일 투쟁 모습. 피켓에는 ‘OECD 평균 장애인 복지 예산 확대’,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 완전 폐지’, ‘예산 반영 없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는 단계적 사기행각이다,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하라!’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 3] 2006년 4월 27일, 장애인들이 활동지원제도화를 요구하며 한강대교를 기어가고 있다. 사진 김유미
한국의 장애인 복지정책은 1990년대 이전 구휼 중심의 정책에서 1990년 의무고용제의 도입과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 2019년 장애등급제 폐지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변화해왔다. 이 몫은 당연히 정부와 정치의 적극적인 추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2019년 장애등급제 폐지에 이르기까지 1831일째 광화문 농성장을 지켰던 수만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2011년 10월 5일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권리로서 돌봄이 보장되었던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2007년 최초시행부터 2009년 시범사업에 이르기까지 맨몸으로 거리를 기어가면서 제도투쟁을 했던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돌봄의 권리와 교육, 이동, 노동에서의 권리 보장은 유효한 이야기로 거리 곳곳과 국회, 각 지자체의 정문앞을 들락거리게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권리의 실현이 여전히 요원한 탓이다. 현 장애정책은 확대된 제도속에서도 여전히 ‘가족’을 벗어난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가족의 돌봄과 보호를 말하는 탓이기도 하다. 수십개의 장애인복지정책 중 당사자에게 직접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크게 장애인활동지원과 장애연금이다. 두 제도는 각기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장애로 인한 근로상실 및 생활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을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두 제도 모두 가구의 소득/돌봄의 가능성을 기준으로 서비스 양을 결정하고 당락의 기준을 삼는다. 장애연금은 장애로 인한 근로상실을 보전하는 목적이지만 연금액을 결정하는 소득인정액은 개별 당사자가 아닌 가구 소득보전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보다 더 첨예하다. 산정되는 본인부담금은 가구소득(건강보험 기준)을 기준으로 각 가~마 등급으로 나누어 부과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서비스 시간을 좌우하는 X3 가구환경은 1인가구, 가구구성원이 장애인이거나 18세이하 또는 65세 이상인 경우 등의 조건을 붙여 차등적인 점수를 부과한다. 돌봄수행의 기본 원칙은 가족(1촌 이내 직계혈족 또는 배우자)가 부담할 것을 전제하며 가족이 돌봄을 수행할 수 없는 조건일때에만-장애가구, 65세 이상 등 – 1인 가구에 준하는 점수를 부여한다. 부양의무제를 폐지했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경우도 여전히 생계-의료보험 부양의무자 기준이 유효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자 혹은 차상위 기준은 비단 생계, 급여, 의료, 주거급여만을 결정하지 않는다. 기타 의료 분야 사회서비스의 기준점이 ‘수급자’로 한정 되기에 이 기준은 매우 중요하다. 장애인의료비지원, 장애인등록진단비 지급 및 발달쟁활 및 언어발달지원, 장애인보조기구교부 등의 경우 건강보험 차상위 혹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생계급여 또는 의료급여 수급자이며 좀 더 완화하는 기준인 경우가 중위소득기준 150~100%이하의 기준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진 4] 2017년 12월 18일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IL과젠더포럼 2차 <독립 규정된 관계를 넘어 나로 살기> 모습.
이처럼 함께 사는 가족의 돌봄이 당연히 수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 정책은 당사자의 삶을 가족내로 편입시킨다. 이는 공감이 오래도록 이야기 했던 바이다. 지난 2월 27일 새로운 미래당이 포용사회정책 1호로 ‘돌봄중심 생활동반자법’을 발표하였다. 법안의 주요 내용에는 의료, 수술동의서 서명 시 법적 보호자로 생활동반자 인정·동거인 사망 시 시신 인도 장례 권한 부여, 전·월세 공동명의 및 개별 자금 대출 허용, 임대 주택 청약 가산점 부여, 사회적 가족 관계 시 가족돌봄휴가 및 장례휴가의 적용 등이 포함되지만 정작 가족내 구성원간의 관계의 재구성에 대한 언급은 전무하다.
내 휠체어를 교체할 때, 활동지원 시간을 결정할 때, 장애등록 재심사 비용을 신청할때, 나아가 독립을 준비하며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장애인연금을 신청할 때 나의 소득과 조건이 아닌 나를 보살필 것을 기대하는 가족의 소독과 조건을 묻는다면 가족내에서 장애여성은 어떤 위치에 설 수 있을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장애인의 위계와 권력은 어떻게 구성될 것인가? 중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정책은 묻지 않고 궁금해 하지 않는다.
장애여성,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사진 5] 2022년 8월 25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심의대응 보고 및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있는 권고 이행 촉구 기자회견
2022년 유엔장애인인권위원회는 제2.3차 대한민국 정부보고서를 바탕으로, 제6조 장애여성과 관련하여 법률에서 장애여성과 여아에 대한 다중 및 교차 형태의 차별을 인정하고 성별 관점과 교차성을 반영하는 특정 법률 및 전략을 채택할 것. 모든 삶의 영역에서 장애여성과 여아에 대한 역량강화와 완전한 참여, 그리고 모든 공공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를 달성하기 위한 조치를 채택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응답은 어떠할까? 우생학적 관점에서 장애인의 출산에 대한 낙인을 찍은 모자보건법은 2019년 낙태죄헌법불합치 결정, 2020년 12월 31일 낙태죄 폐지 이후로도 현장에서 유효한 기준으로 지원을 결정하는 지침으로 작동하고 있다. 2022년 한 제약회사가 유산유도제(미프진)의 자진철회를 진행하였고 식약처는 민간의 영역임을 이유로 방기하고 있으며, 2020년 11월부터 ‘모자보건법 및 형법 개정 추진’ 정부안조차 3년째 국회를 표류하고 있다. 심지어 2023년 9월 여성가족부는 10년간 진행한 비장애학생과 장애학생이 참여하는 성인권교육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폐지하였다. 찾아가는 폭력예방교육과 사업의 목적이 중복된다는 이유였다.
1998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5년 단위로 수립된 한국의 주요 장애정책계획은 장애인정책종합계획으로 발표되었다. 중·장기적으로 계획된 정책이라는 점 에서 국가차원의 장애정책 전체 성격을 내포한다. 그렇다면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23~2027년)에서 장애여성의 위치성을 전복하고 권리를 보장할 정책이 제안되고 있을까? 분야별 핵심과제로 장애인학대예방과 정신/여성장애인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서 장애여성을 둘러싼 정책은 장애여성 건강권 및 성재생산 영역으로 출산비용 지원과 장애인보건의료센터를 통한 모성권 보호 및 건강보건관리 지원, 여성장애인 성폭력/가정폭력 지원을 위한 전담 상담소 및 보호시설 운영을 제안하고 있다. 특히 2023년부터 장애친화적 산부인과 지원 사업을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지만, 서울 경기지원을 보았을 때 연간 분만실적이 100건 이상인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으로 제한되었기에 서울대학교병원, 성애병원, 이대목동병원에 불과하다. 탈시설 운동에서 주요하게 제안하였던 시설거주 장애/여성의 재생산권 침해 실태조사 및 정책 마련은 여전히 보이지 않으며 3차 병원 이외에서의 접근권, 물리적 접근권 이외의 언급들은 전무하다. 보다 더 주요한 것은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으로 평등한 성인식 강화를 말하고 있지만 성인권사업 폐지이후 공교육과 일상의 현장에서 성적권리와 관련한 교육과 지원은 공백인 상황이다.
또한 여성장애인의 인권보호 및 지원, 폭력방지 및 피해자 지원 등은 피해자 중심에 머물고 있으며, 피해 종료 이후에 대한 지원 및 정책은 부재하다. 선별적인 지원정책은 여전히 변화하지 않고 있다. 경제활동 지원과 관련된 제도로 장애인의 경제활동 지원을 위해 장애인 고용의무제도 개편 및 운영강화를 위한 장애인 취업지원 및 직업 능력개발서비스 제공을 위해 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주로 사업주를 지원 하는 방식으로 장애여성의 차별적인 노동환경에 대한 분석과 통합적인 접근은 부족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렇듯 장애여성 관련 정책은 성재생산 영역 및 건강 정책에서, 임신 출산에 집중되어 있으며 출산 이후 양육과 관련된 정책도 제한적이다. 보편적 의료-건강 정책에서 장애는 임신산전-산후 검사 등 ‘예방’에 집중되어 있기도 하다. 교육과 일자리 등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정책은 부족하며 일자리 정책은 고용안정자금 이외 찾아보기 어렵다.
[사진 6] 2024년 장애여성이 IL운동의 판을 만들자! <장판, 만들자!> 장애여성정책 워크숍을 진행 중인 모습. 작년 <장판, 흔들자!>를 함께 한 장애여성활동가들과 장애여성정책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정책에 추동하고 결정하는데 있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나의 모습대로 나의 속도대로 나의 몫으로 살 수 있는 정책이다. 권리의 실현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책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는가를 질문할 때 답을 찾기 어렵다.
많은 투쟁의 시간속에서 법과 제도, 정책은 변화를 멈추지 않고 가고 있다. 그 몫은 다른 누군가가 대신하여 앞서서 만들어 주지 않는다. 우리에게 있으며 법과 제도, 정책과 일상을 변화시킨다. 그렇기에 공감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는가를 질문하며. 2024년 22대 총선을 앞두고 강동구 총선을 대응하며 다음과 같은 정책안을 제안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시설화되지 않은 돌봄 공공성 보장 체계 마련하라!
시설 거주 장애여성의 재생산권 침해 실태조사 및 정책 마련하라!
장애·아동청소년의 포괄적 성교육 보장 및 성과 재생산 권리 기본법 제정하라!
젠더 기반 폭력 피해 경험 장애여성 지원 정책 확대 하라!
장애인거주시설 완전 폐쇄를 위한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 제정 및 계획 추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