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흥순 감독의 [메모리얼 샤워] 프로젝트 중 <고치글라 run with me> 파일럿 워크숍 리뷰_
할머니 x 할머니 x 장애여성 김미진
장애여성공감 김미진
제안, 사전준비: “김동일, 그녀를 만나다”
지난 6월 8일 ‘위로공단’, ‘비념’,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믿음, 신념, 사랑, 배신, 증오, 공포, 유령)’ 등의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임흥순 감독의 새 작품 [메모리얼 샤워] 프로젝트 중에 하나인 <고치글라 run with me>워크숍 참여를 제안 받았습니다.
제주4.3사건 으로 원치 않게 일본으로 밀항해 50여년을 사셔야 했던 고 김동일 할머니의 역사와 삶이 담긴 옷을 매개로 보고, 만지고, 입고, 리폼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워크숍의 형태로 이루어진 자리를 이후 더 확대해서 김동일의 삶을 나누고 우리의 삶을 연결하며 과거의 경험을 지금의 삶으로 끌어내고 해석하여 런웨이까지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나도 할머니를 애도하고 지지하는 한 사람이 되어, 옷을 나누고 재활용 하면서 환경 문제를 돌아보는 것, 또 현재와 연결해 각자의 삶에서 경험하는 국가폭력과 가정내에서의 위계, 거리에서의 시선과 낯섦음 그리고 더 나아가 시설사회의 삶 등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공유하고 함께 고민해보는 것까지 이어갈 수 있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9일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표 예약과 숙소 예약을 해보았고 집을 벗어나 혼자 공항을 가 제주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워크숍 1회차 (10일. 토요일) : 함께 기워나가는 삶, 시간.
[이미지 1] 강상희 할머님댁 측면 사진. 집 앞으로 철제 구조물이 있다. 철제 구조물에 뜨개 작품, 거울이 달려있다.
장소:제주시 애월읍 납읍로 고 강상희 할머님댁
4.3 사건 피해자의 유족으로 영화 <비념>에서 강상희 할머님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창고 안팎-현무암 돌담길을 따라 들어가면 단아한 마당엔 나무와 꽃들, 돌 사이에 몇개의 뜨개 장식이 걸려 있고, 전신 거울, 카메라, 음료대, 창고엔 할머니의 옷과 의자, 서랍장, 양산, 뜨개 작품 등이 빼곡히 진열 되어 있다. 작은 정원엔 비파, 수국, 분홍 달맞이, 블루베리, 로즈마리 등이 어우러져 있고, 주인몸에 최적화된 구조의 집이 있습니다.
[이미지 2] 강상희 할머님댁 후면 사진. 집 벽으로 뜨개작품이 크게 이어 걸려있다. 집 앞으로 푸른 화원이 펼쳐져 있다.
<고치글라> 워크숍은 참여형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먼저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이자 생존자였던 고 김동일 할머니의 인터뷰 영상(임흥순 감독 작품의 일부)을 감상하고, 추가적인 정보도 전해 들으며 할머니의 역사, 성정, 일상, 개성, 감정 등을 유추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두번째 순서는 (주)질경이우리옷의 이기연대표가 옷의 원료, 역할 등에 대한 강의를 했습니다.
세번째 순서는 참여자 인사와 전시 되어있는 할머니의 옷을 고르고, 선택한 이유를 발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원주민인 영상 작가, 한복 디자이너, 펜션운영 예술인(민요.연극), 귀촌인, 카페 운영자, 패션 관심남, 오키나와에서 온 일본인 아키비스트 등 10명이 참여했습니다. 우리는 각자 김동일, 할머니가 남긴 옷가지를 고르고 선택 했습니다. 내가 처음 고른 옷은 초록 바탕에 목과 손목 밑단에 검은 테두리가 있고 구슬과 비즈로 장식된 검은 용과 녹아내리는 시계 문양이 수놓인 간절기 점퍼였습니다. 그런데 주최측에서 연구 자료로 지목해 놓은 것이라고 양해를 구하는 바람에 반환 했습니다. 새로 선택한 옷은 좀 먹은 갈색 가디건과 크리스탈 비즈와 자주색 천 꽃이 덧대진 보푸라기가 많은 분홍색 티 였습니다. 이 옷은 처음 택했던 옷에서 느껴진 화려함과 정반대편에 있지만, 그렇기에 오래된 시간과 수많은 관계, 환경의 역동 속에서 치열했을 과정이 선연하게 보였습니다. 할머니가 이 옷을 버리지 못한 여러 상황을 떠올려봤습니다. 낡은 옷깃 속에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거나 삶에서 중요한 변화를 겪어내야 했던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옷은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 할머니, 김동일의 도전과 기개, 저항을 장애운동 현장과 연결해서 리폼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미지 3] 김미진 활동가가 택한 좀 먹은 갈색 가디건과 크리스탈 비즈와 자주색 천 꽃이 덧대진 보푸라기가 많은 분홍색 티가 창틀에 걸려있다. 창 밖으로 바다와 푸른 잔디, 나무들이 보인다.
워크숍을 마친 후 고른 옷을 들고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창에서 하늘, 물, 나무, 풀멍을 하다 김동일 할머니를 초대하는 나만의 의식을 가졌습니다. 옷을 나란히 창가에 걸고, 침대에 뉘여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쉰 다음 옷을 꾸려갔습니다. 좀 먹은 갈색 가디건은 지금 이대로 걸치고, 분홍색 티는 김동일 할머니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담긴 모자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4.3 희생자들을 향해 “이 한라산 꼭대기에 솔나무가 되어 가지고, 낙낙장송 해주시오! “, “당신이 흘린 피는 이슬이 되어 영원히 영원히 빛나리로다!” 속울림으로 울리던 그녀의 음성이 바늘 한 땀 한 땀에 담기길 희망했습니다. 모자를 만들고 남은 천으로는 김동일 그녀의 카랑카랑한 외침이 그대로 울리는 현재의 장애여성운동 현장의 구호와 만나기를 희망하며 집회에서 팔뚝질 할 때 쓰면 좋을 천 팔찌로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보푸라기 하나하나 이슬로 여기며 정리하고, 재단하고, 바느질을 하며 그녀의 삶과 나의 삶을 함께 기워나갔습니다.
[이미지 4] 갈색 가디건을 입고, 리폼한 모자와 천 팔찌를 착용한 김미진 활동가의 모습. 단호한 표정으로 팔뚝질을 하고 있다.
워크숍 2회차(11일. 일요일) : 돛과 깃발과 같은 할머니, 김동일의 옷
워크숍 이틀째, 다시 돌담길을 걸어 들어가 인사를 나누고, 정원을 둘러보고, 시원한 차 한 잔 받아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첫번째 시간, 참여자들은 리폼한 부분까지 발표한 후 이어서 남은 작업을 손바늘과, 재봉틀, 핀으로 각자의 방식과 속도대로 작업했습니다. 두 번째 시간은 준비된 만큼 착장을 하고, 리폼 과정과 의미, 각자의 일상에서 어느 공간에서 입을지를 발표했습니다. 이어 세번째 시간, 이후의 계획과 소감을 나누기, 리폼한 옷을 착장후 개인, 단체 사진 촬영, 인터뷰로 이어졌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옷걸이에 촘촘히 걸려 있는 옷들을 차근차근 보고 있자니 옷 주인을 기억하는 옷들이 지나온 시간과 사연을 들려주는 듯 했습니다. 이 많은 옷들은 오직 단 한사람. 김동일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다른 옷 입고, 직접 짠 옷을 입고, 모자하고 색도 맞춰 입고 하니 행복한 할머니라고, 우아한 할머니라고 일본 사람들이 말해.”(김동일 할머니의 인터뷰 구술기록 중에서)
[이미지 5] 행거와 진열대 가득 매운 김동일 할머니의 옷 등 물품들.
형형색색 각양각색의 다양한 옷들이 그녀의 삶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짐작해봅니다. 이주여성으로서 고국을 떠나 낯선땅 일본에서 50년을 도시락집을 운영하며 살았던 삶은 어떠했을까? 제주의 푸른 바다 넘푸른 파도와 바람, 오름들의 사이에 켜켜이 묵은 한 사람 한 사람의 통곡의 서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그 땅을 떠나 어머니를 떠나야 했던 제주의 추운 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자존감이고 저항이고 자유와 위로, 교류와 소통의 방식이기도 했을 옷을 다시금 바로보았습니다. 마침내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시간 속에서, 지난한 삶에서 옷은 상황과 감정의 변화에 대처하고 대응해야 할때, 지켜내야 할 때 돛과 깃발의 역할을 해주었을 것입니다. 때때로 자신의 갑옷이 되어주었을 겁니다. 장애여성인 내가 착용하는 보조기와 맞닿아있습니다. 때때로 나의 족쇄이고 갑옷이며 정상을 향하고 픈 사회와 가족과 나의 바람으로 시작되기도 한 보조기. 이것을 벗는 순간 바로 기우뚱대는 걸음이 되는 ‘장애여성’이 되는 차가운 보조기. 이것이 주는 안정감과 정상성의 신화…이 모순을 떠올리며 김동일, 그녀의 옷들을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동료들과 구호가 쓰인 티들과 김동일 할머니의 옷들을 연결하고 해체하며 새로운 것으로 변화 시키고, 의미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의 시간을 함께 기워 나가고 기억하며 말입니다.
[이미지 6] 김미진 활동가가 김동일 할머니의 갈색 가디건을 입고, 자신의 보조기를 한 팔에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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