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웹소식지>기획> [활동지원 종합조사 산정특례 기획글] ‘산정특례’ 무엇이 문제인가

‘산정특례’ 무엇이 문제인가 

장애여성공감 독립생활센터[숨] 활동가 정주희 

활동지원 조사는 당사자의 욕구를 반영하는가 

활동지원 서비스는 장애인의 독립생활을 위한 기반으로 장애계가 가열찬 투쟁 끝에 쟁취한 제도다. 2019년 7월, 30년만에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며 등급에 따라 판정되던 활동지원 서비스의 조사표도 바뀌었다. 수급 자격 판정 도구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는 장애인의 욕구와 환경 등을 고려해 수요자 중심의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말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장애등급제와 마찬가지로 당사자의 ‘무능’을 검증하는 데 주력한다. 이전부터 제기했던 기능 중심의 평가 기준을 고수한 채 의학적 기준과 가구환경, 사회활동 항목을 조사표에 반영한다. 새로 바뀐 체계에 따르면 중증 지체장애인이면서, 취약가구이고,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여 있으며,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이상 최대 시간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확대한 인원을 수용할 예산마저 동결했다. 전년과 비교해 예산은 늘었지만 서비스 단가 인상 비용을 담아냈을 뿐이다. 그나마 긍정적 변화라면 지원 대상자가 늘어 1만 명이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산에 맞춘 조사 기준 때문에 기존 시간이 하락한 사람은 당사자의 14명 중 1명에 달한다. (기존 당사자 85,000명, 삭감된 인원 2,913명)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결국 허울좋은 수사에 불과했다. 문제 제기가 지속되자 정부는 ‘산정특례’로 이전 인정 조사 시간을 유지하겠다는 임시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국가가 보장하는 활동지원 시간이 유지된다 하여도 당사자의 시간은 삭감될 수 있다. 지자체가 제공하는 활동지원은 지자체 관할이고, 조사표의 X1 점수(기능제한)에 따라 산정된다. 따라서 하락한 점수만큼 시⋅도비 지원이 줄거나 중단되는 것이다. 산정특례로 삭제되는 시⋅도비 시간은 누가 보장할  것인가? 산정특례를 유지한다면 그 기간은 언제까지인가? 무엇보다 편협한 조사 체계에서 유예되는 장애여성의 권리는 어떻게 다룰 것인가?  

 

장애여성의 삶을 반영하지 못하는 종합조사

활동지원 서비스는 3년마다 갱신해야 한다. 주민센터에 갱신을 신청하면 국민연금공단에서 담당 직원 2명이 당사자의 집을 방문 조사한다. 조사 결과는 활동지원 서비스 구간을 판정하는 데 주된 근거가 된다. 그렇기에 조사 과정의 객관성과 조사원의 장애인식 또한 매우 중요하다. 당사자는 조사를 위해 자신의 몸과 사적인 공간을 드러내야 한다. 조사 결과가 활동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의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조사관은 당사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조사관은 옷을 입을 수 있는지, 밥을 혼자 먹을 수 있는지 묻는다. 장애여성의 경우 생리를 할 때 신변보조가 얼마나 더 필요한지 권리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적 영역을 질문하는 것으로 치부된다. 이렇게 장애인의 삶을 반영하지 않은 기능 중심의 조사표를 바탕으로 ‘대상자’의 몸을 자의적으로 판단한다. 이 같은 방식은 비슷한 유형의 장애와 환경을 가진 이들에게도 판이하게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각 세부 항목의 근거조차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10분 가량의 짧은 시간동안 장애인의 ‘수요’를 파악할 수 없다. 장애여성공감 진성선 활동가가 삭감된 시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야간활동지원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을 때, 공단 직원은  “저녁 8시부터 출근 전까지는 밤이니까 활동지원이 필요 없지 않냐”, “지금 시간으로 봤을 때 그 시간이 충분한 것 같다”고 답했다. 조사표는 장애인의 주체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지원제도의 취지를 반영하지 못하며 장애가 있는 삶을 전혀 상상하지 못한다.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산정특례

국가는 어차피 하락한 시간이 보전되니 문제가 없지 않냐고 한다. 그러나 산정특례는 그 기한조차 불분명한 임시 조치에 불과하다. 게다가 탈락된 시⋅도비 시간에 따라 총 활동지원 시간도 보장되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활동지원 시간이 삭감된 당사자에게조차 변화된 조사표를 비롯한 그 어떤 정보도 전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은 권리 주체가 아닌 복지 수혜자로 전락하며 차별적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게 된다. 산정특례 같은 임시방편이 아닌 근본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투쟁은 계속된다. 지금의 활동지원제도는 수요 중심이 아닌 예산 중심의 제도다. 장애인 당사자들은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길 거부하며 권리의 주체가 되기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장애인을 격리하고 배제해왔던 국가는 지금까지의 통제 전략을 반성하고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공적 지원이 있어야 우리는 차별적 구조에서 각자도생하지 않고 존엄하게 살 수 있다. 장애여성공감은 8월 3일 산정특례 이의신청 기각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공감은 장애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가로막는 억압에 맞서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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