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회원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진희(장애여성공감 활동가)
공감에선 진영진경 쌍둥이자매로 친숙한 진영님은 9년차 특수교사다. 진경님이 작년까지 상근활동가로 7년, 진영님은 장애여성학교 한글반 강사로 6년을 함께 했으니 쌍둥이자매 모두 공감과의 인연이 남다르다. 얼마 전까진 특수학급에서 아이들과 만나며 겪는 경험과 고민들을 잡지 「공감」에 기고하며, 장애아동청소년 교육과 일상의 현장들을 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한 진영님. 최근들어 공감의 발달장애여성회원은 점점 늘어나 이제 전체 회원중 과반수를 넘었다. 관계맺기와 소통, 놓치지 말아야할 긴장과 감수성은 무엇일까 언제나 활동가 가까이 걱정과 고민을 나눠주는 회원 진영님을 만나 보았다.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장애인들의 삶에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했었어요.
● 공감: 진영님은 공감을 언제부터 알고 활동하시게 된 건가요?
진영: 공감을 안 건 굉장히 오래전, 고등학생 때였어요. 18살 땐가 19살 때인가? 다음(Daum)에 공감 카페가 있던 시절인데요. 회원 가입 신청서 썼던 건 2002년 말에 와우(WAW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하면서 다닮(다름으로닮은여성연대) 활동하느라 공감 사무실 왔다 갔다 하면서였어요. 온라인 회원으로 있다가 그때 와서 신청서 쓴 기억이 나요.
● 공감: 일찍부터 공감을 알고 계셨네요. 카페는 어떻게 알게 되신 건가요? 그리고 현재 초등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일하고 계신데요. 어떤 계기로 특수교육을 전공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진영: 특수교육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에 대한 질문은 가끔씩 받게 되는 질문이에요. 활동가 분들도 그런 질문 받지 않나요? (공감: 맞아요 ^^)
원래는 제가 영화를 좋아하니까 다큐멘터리 쪽에 관심이 있었어요. 다큐를 보면 장애인들을 많이 다루잖아요. 당시만 해도 장애인을 어떤 집단으로 생각했던 것 같고, 그래서 그런 쪽에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특수교육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 안 해봤고,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고등학교 다니다가 갑자기 특수교육을 떠올리게 됐고 그게 장애인들의 삶에 다가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특수교육과에 온 사람들하고 이야기 하다보면 ‘너는 왜 왔니?’ (웃음) 물어보는데 원래 교직에 뜻이 있던 사람들도 많고, 의대나 그런 쪽에 관심 있었던 사람도 있더라고요. 근데 저는 원래 교직에 뜻이 있던 것은 아니었어요. 장애인에 관련된 특수교육과에 가야겠다고 생각을 불현듯 하고 나서 장애인에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봤어요.
2000년대 초반 한창 인터넷 전용선이 깔리던 시기라서 검색을 한거죠. 그때 제가 인터넷에 빠져들던 시기라서요. 아시다시피 제가 사교성이 부족하잖아요. (웃음) 말을 잘 못하니까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데 빠져있었던 거예요. 그때 언니네 사이트 보며 여성주의에도 관심이 있었고 장애여성들에 대한 걸 찾아보게 되었어요. 여러 가지 찾다가 장애여성공감을 우연히 알게 된 거예요. 그때가 공감이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되었을 당시예요. 어떤 글을 보게 되었는데 몸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제가 허리 수술하고 난 이후로 몸의 조건과 관련해서 개인적인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 되게 많이 와 닿았어요.
장애여성으로서 어떤 것들을 이야기하는데 ‘아, 이런 게 있구나’ 생각했어요. 거기서 내는 목소리들이 제가 생각하고 있던… 음… 이렇게 얘기하면 좀 웃긴데 특수교육과에 진학하려고 할 때 제가 가지고 있던 신념이랑 잘 맞았다고 생각한 거예요(웃음). 그렇게 방향을 잡고 나서는 고3 때도 계속 알아보고 자료를 찾았어요. 대학에 갈 때도 ‘나는 장애여성을 위한 교육활동을 하겠다’라는 나름의 굉장히 뚜렷한 생각이 있어서 진학을 했죠. 그래서 특수교육과에 가겠다고 생각할 때도 장애여성공감이라는 단체를 염두에 두고 있었죠.
● 공감: 처음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느낌은 어떠셨어요? 당시만 해도 수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여성들이 많았던 시기였는데 공감의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언니들이 가지는 굉장한 에너지와 포스가 있었잖아요.
진영: 처음에는 제가 지금보다 말이 더 없었으니까 분위기 자체가 낯설긴 했죠. 그 뒤로 2003년 이후로 행사나 교육과정에 참여했는데… 좀 어색함은 있었던 것 같아요. ^^;
학교와 한글반, 수업으로 만나며 관계를 쌓고 깊어지기
● 공감: 장애여성학교에서는 계속 한글반에서 수업을 하시고 작년에는 지적장애여성집단 ILP도 진행하셨어요. 그밖에 성교육 개발 프로젝트 등 많은 활동에 힘을 보태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떤 일인가요?
진영: 제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2005년 장애여성 생애사 작업할 때에요. 생애사를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했는데 마무리가 힘들었어요. 타리랑 같은 팀이었는데… 그게 기억이 많이 나긴 해요. 그리고 성교육 관련된 작업들도 지난한 몇 번의 과정들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가장 많이 애착을 갖고 고민한 것은 한글반이겠죠.
● 공감: 네, 진영님 하면 한글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지요. 2009년부터 현재까지 (한해를 제외하고) 장애여성학교에서 한글반을 담당하고 계시는데 학교의 특수학급 수업과 어떤 닮은 점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진영: 제가 아이들을 대하는 게 좀 보편적이지는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개인사와 관련된 부분이라 뭐라고 쉽게 설명하기가 어려운 게 있어요. 물리적인 학교라는 공간 자체는 저한테 굉장히 힘든 부분들이 있어요.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제가 같이 생활하고 같이 삶을 살아가는 존재, 그리고 학교에서 저를 아는 사람들이 그 아이들인거죠. 저의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관계예요. 특수학급의 특성상 몇 명의 아이들을 장기적으로 만나게 되죠.
장애여성학교 한글반 하면서 그동안 많은 참여자를 만났어요. 일년만 만난 분도 있고, 이삼년 계속 만난 분이 있어요. 그래서 관계가 쌓인 것들도 있는데 학교의 참여자분들은 제자나 학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기 때문에 관계 맺는 방식 자체가 굉장히 다르죠.
그리고 사실 지금은 좀 나아졌는데 저의 큰 약점이 수업과 관련된 부분이었거든요. 내가 수업을 너무 못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학교 다닐 때 그런 생각이 굉장히 강했는데 한글반에서 수업을 하면서는 그래도 그런 부담이 좀 적었던 것 같아요. 한글반은 일주일에 한 번의 만남이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정성을 쏟게 되고 그만큼 한 시간의 수업을 내가 고민해가면서 만들어가는 것들이 있었고요. 학교는 월화수목금 일상적인 수업이 되고 수업마다 아이들이 오는 시간이 달라서 전체 수업을 하기도 하지만 아닐 때가 많죠. 한글반은 일주일에 한번 다 같이 모여서 수업하는 것이 다른 것 같아요.
● 공감: 장애여성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사 관계로 만나진 않는다고 하셨는데요. 학교에 참여하는 많은 회원분들은 진영님에게 자연스럽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기도 하잖아요. 프로그램을 담당하거나 진행하는 저에게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최근엔 회원님들과 어떻게 만나고 관계를 맺어야 할까 큰 고민이에요. 진영님은 어떠세요?
진영: 그것도 한글반 초기랑 지금이랑 다른데요. 저한테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생활연령 특히, 지적장애인들의 생활연령이 무시되는 게 있잖아요. 저보다 나이가 많거나 또래와 수업하는 것 자체가 제가 일하는 학교에서와 다른 상황이에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 상황인데, 한글반에서는 성인기인 사람들과 만나고 있죠.
저는 공감에 강사로 온 게 아니라 원래 회원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강사 역할을 맡게 된거잖아요. 저는 학교 밖에서 누군가가 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게 편의상의 호칭이기도 하고요. 일터에서 불리는 호칭 같은 거죠. 그래서 (한글반 참여자분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 자체가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긴 했어요.
제가 수업을 하다보니까 수업을 한다는 것은 (공감에서 그동안 해온 활동과) 다른 차원의 부분인 것 같긴 해요. 몇 년 동안 관계가 쌓이면서 서로 좀 아는 사이 같은 느낌이 되는 것 같아요. 일 년의 과정에서는 형성되긴 힘들지만.. 저도 낯을 가리는데 어떤 분의 경우엔 낯가림이 심해서 이 분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 낯선 상황에서 일주일에 한번 만나고, 이게 이삼년은 쌓여야 서로 아는 사이 같고, 그런 것들이 있어야 수업을 할 때에도 부담이 적었던 것 같아요. 저는 농담을 잘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제가 지나치게 진지하게 보일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 그런데 학교에서는 아이들이랑 농담을 종종해요 서로 익숙하니까. 장난을 하는 거죠. 학교에서 다른 선생님들은 저의 그런 모습을 잘 상상하지 못하는데 공감의 한글반에서도 농담을 하게 돼요. 그렇게 변화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져 간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변화하는 공감 그리고 회원활동에 대한 아쉬움.
● 공감: 진영님은 활동가가 아니라 회원이신데 공감의 사업에 깊숙하게 함께 하신 것들이 많아요. 사업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 계시고요. 최근에 공감이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변화를 거쳤는데요.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 정말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라는 생각이 드실 때요.
진영: 공감에 오래 계셨던 분들이면 그렇게 느낄 것 같은데요. 그 전에 고덕동 시절일 때는 공감 안에서 왁자지껄한 느낌이 있었어요. 공감이 있던 고덕동 세종플라자를 떠올려보면 계속 뭔가 모여서 얘기하고 있는, 얘기할 것 같은 모습들. 뭔가 엄청나게 바쁜 느낌은 지금보다 덜했던 것 같아요. 진희씨가 이야기 한 것처럼 에너지가 많았고, 그런 에너지가 충돌하기도 했지만, 역동이나 그런 것들은 많이 있었겠죠. 난장이나 문화제 그런 활동할 때요. 그 이후에 여러 가지 좀 분화되고 규모가 커지고 사무실 옮기고 그러면서 상근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어요. 저도 진경이가 아니었으면 사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굉장히 많은 일을 하고 중간에 사람도 많이 바뀌고요. 그래서 많이 분주한 느낌이 들긴 해요. 회원분들 느낌도 많이 달라지고 공감에서 고민하는 부분들도 많이 달라진 것 같고요. 15주년에 이야기 한 것처럼 지적장애여성들 분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저에게 지적장애와 관련해 이것저것 소통하고 의견을 많이 물어보는 상황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 공감: 활동이 확대되었지만 회원활동은 좀 침체됐잖아요. 회원활동이 잘 안 이루어지고 비장애여성이 많이 없는 부분들도 있고요. 내부적으로도 원인과 대책을 분석/평가하기도 하는데요. 왜 그럴까요?
진영: 저는 그게 늘 안타까운 부분이긴 하죠. 한글반에서 강사를 해도 공감에서 회원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자리에서는 비장애여성 회원이 저밖에 없고 그러니까요. 근데 저는 원래 공감 활동에 관심 갖던 사람이고 관심을 지속하고 있는 건데 예전에 관심 있던 사람들도 그것을 지속하느냐의 문제는 쉽지 않아요. 새로 관심 갖게 되는 사람들도 드물다는 거고요.
저는 어쨌든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으니까 (특수교사 중에)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예전에 대학생들이 자원활동을 하고 그런 것들이 있었는데. 대학생들의 삶이 더 팍팍해지고 관심을 둘 여유가 없는 것인지…
공감: 공감이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요. 그래서 장애여성학교의 프로그램들을 조금 더 다양화하여 접촉면을 늘리려는 시도도 하고 있어요. 공감의 운동을 알리고 함께 할 수 있는 거리들을 넓히는 거지요. 그런데 저도 활동을 하지만 공감의 운동을 알아가려면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구나… 라고 느낄 때가 많아요. 진영님은 어떠세요?
진영: 공감이 활동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부분이 있죠. 언뜻 느꼈을 때, 외부에서 볼 때는 어려운 얘기, 복잡한 얘기 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고 재미없다고 느낄 수 있고요. 공감에서 회원활동 할 때 간간히라도 장기적으로 오시는 분들 계시잖아요. 그런 분들이 공감에서 느끼는 무언가가 있는 거고, 그런 유대감이나 소속감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재미를 느껴서 오는 것 같기도 해요.
뭔가 단순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 부분인데 굉장히 많은 여성들의 삶의 어떤 것들, 회원이나 활동가들 전체를 통틀어서.. 뭔가 느낄 때가 있어요. (장애여성)학교 개강식이나 졸업식 때.. 그렇게 활동가들이나 회원들이 어떤 공간을 꽉 채울 때의 느낌, 진희씨도(알지 않나요?) 진희씨는 그런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지만.. 규정지을 수 없는데 그런 공간이 다른 곳에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선배들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
공감: 네 공간을 꽉 채우고 있을 때 알 수 없는 힘, 느낌 같은 것이 있어요. 앞으로 회원활동은 활동가들이 계속해서 노력해 가야하는 부분이네요.
아, 그리고 거부당한 몸을 번역하셨잖아요. 번역자로서의 경험은 어떠셨나요? 그리고 책을 읽고 피드백 주는 사람들은 없었나요?
진영: 출판하는 것은 굉장히 쉽지 않았죠. 그리고 다른 (공동) 번역자들은 대학원 과정에서 학문적인 차원에서 공부를 한 것이고 저는 좀 다른 상황이잖아요. 학문적인 배경을 공동번역자들만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인데, 어떤 부분은 내가 배경지식이 없어서 이해가 안 되는 건가 싶기도 했어요. 책에 대한 피드백은, 진경이가 활동하는 사람들 만나서 들은 얘기, “좋았다고 하더라”라며 전해주었어요. 번역은 역시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지만 그 책이 중요하고 의미있는 내용들이 많은데 한국어로 출판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공감: 마지막으로 최근에 집중하는 이슈나 꽂혀있는 주제가 있다면요.
진영: 교재 만드는 출판 작업을 연구회에서 하고 있고요. 학교에서는 특수교사로서 관련된 고민들을 계속하고 있고, 특수교육 현장과 관련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제가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특수교육 현장에서 특수교사들이 어떻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어떤 사건 (예를 들어) <도가니>가 미친 영향이 엄청나잖아요. 교육부나 교육청을 통해서 특수교육 현장에 제도들이 들어오고, 교사들은 대응을 해야 하죠. 특수교사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거창한 걸 생각하는 것은 아닌데… 개인적인 고민이에요. 어떻게 하면 특수교사들이 담론을 만들어내고 목소리를 낼까. 특수교육도 유초중등 과정이 있고 복지관이나 다른 현장들도 있는데 특수교사들도 서로 현장을 잘 모른다는 생각을 하죠. ‘여러 가지 현장들을 잘 모르는데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까?’
저의 꿈은… 전에는 '장애여성을 위한 교육활동을 하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저한테 한글반은 그런 면에서 꿈과 연결된 것 같아요. 몇 년 전부터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죠. 재작년에는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은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선배들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
앞으로 계획은 일단 제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 잘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한글반도 이후를 생각해서 잘 정리하고, 교재 출판 작업도 잘 해야 할 것 같고요. 그런 것들이 잘 정리되면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그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해요.
매주 수요일 6시 30분에 시작하는 한글반.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온 직후라 피곤할 수밖에 없는 진영님. 그래도 1시간 30분이란 수업시간은 빼곡이 준비해온 강의자료와 이야기로 채워졌었다. 매번 놀라곤 했다. 언제 저렇게 준비 해오신 걸까? 6년이란 긴 시간을 한글반에 대한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일궈왔는지 이 인터뷰 통해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깊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제나 진영님을 보면 지쳐있는 흉내를 내며 놀리고 했었다. 당일에도 진영님은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하지만 공감에 대한, 특수교육 현장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작은 목소리에 다양한 감정과 느낌이 전해졌다. 정말 그 일을 중요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담을 수 있는 느낌말이다.
앞으로도 공감의 문제의식을 잃지 않고 진영님이 몸담고 있는 중요한 또 다른 터전인 특수교육 현장에서 풀어내고 있는 진영님. 앞으로 진영님이 공감에 들려줄 발달장애와 특수교육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