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탈시설 권리를 통제한 신아원의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을 규탄한다.

 

[신아원 긴급탈시설 이행 및 000 인권침해 조사촉구에 대한 국가인권위 결정문 규탄 논평]

탈시설 권리를 통제한 신아원의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을 규탄한다.

2021년 2월 22일, 장애인거주시설 신아재활원(이하 신아원)에서 33년을 살았던 발달장애남성 A님이 시설을 나왔다. A님이 송파구청과 장애여성공감, 서울시청에 탈시설 의사를 밝히는 서신을 보냈다는 이유로 종사자에게 불려가 질책을 받은 직후였다. 2020년 코로나19 상황 이후 거주인의 면회, 외박·외출은 전면금지하였으며, 탈시설 지원을 위한 모든 외부의 지원을 차단하였다.

그러나 예방적 코호트격리의 실패를 증명하듯 2020년 12월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신아원은 거주인을 긴급분산조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화통화를 관리하거나 전화기 사용을 어렵게 하는 등 거주인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A님은 탈시설 의사를 밝히는 서신을 외부에 보낸 후 질책을 받았고, 이후 긴급하게 시설을 탈출해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에 지원을 요청했다. A님의 증언으로 신아원에서 오랜 기간 벌어졌던 핸드폰 검열, 무시 및 욕설, 탈시설 의사방해, 문제행동을 처벌하는 방안으로의 약물복용, 폭언 및 폭행 등의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A님과 장애여성공감,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코로나19 코호트격리 상황에서 외부와의 소통차단 및 정보 폐쇄 ▲당사자의 탈시설 권리 통제 ▲문제행동에 대한 통제로서의 약물복용 ▲종교자유침해 ▲신체적 폭력 및 위협 등에 관한 진정을 제기했으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책임있는 조사를 촉구했다. 인권위는 2021년 12월 30일, 10개월에 달하는 긴 조사 끝에 ‘감염병 집단감염으로 인한 격리시 장소 및 기간, 이유 등을 지적장애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적절히 고지할 것을 권고한다’ 외 진정 내용들은 모두 각하 및 기각했다. 본 결정은 일상적 차별의 구조와 문화로 유지되는 장애인 거주시설의 질서와 맥락을 읽지 못하고, 사건과 피해 강도 중심으로 인권침해를 판단하는 기존의 협소한 관점을 벗어나지 못한 판단이다.

1. 휴대전화 사용 제한 및 검열의 경우 ‘피해자 A님을 제외한 42명의 거주인은 피해사실이 없고 사건이 특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그러나 30년이 넘는 시간을 시설에서 살아온 거주인 위치에서 이러한 인권침해는 새로운 ‘사건’이라기 보다 일상의 한 부분인 측면이 크다. 따라서 ‘사건’으로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침해 상태를 문제 삼아야 한다. 인권위는 ‘시간과 가해한 종사자의 이름을 모르는 등 피해 사실을 특정하기 어려워 기각되었다’고 결정의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시설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있는 거주인이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말하기는 어렵다. ‘종사자가 핸드폰을 가지고 가서 나중에 주었다’는 거주인의 진술을 토대로 휴대폰 사용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구체적인 피해사실을 확인하는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졌어야 한다.

2. 서신의 자유 침해는 피해자가 ‘편지를 외부에 보낸 과정에서 사건경위를 추궁한 사실은 있으나 화를 내는 지점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기각되었다. 추궁하는 과정에서 종사자가 ‘화’를 냈는가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탈시설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를 했는가로 판단해야 한다. ‘탈시설 의사’를 외부에 알린 것만으로 호출하여 경위를 확인하는 것은 서신의 자유와 탈시설할 권리를 침해한 행위이다. 따라서 조사과정에서 서신의 내용을 파악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이전에도 있었는지, 추궁과 불이익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지 등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모든 정황을 세밀하게 파악했어야 한다.

3. 퇴소방해 사안도 위의 서신의 자유방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인권침해로 판단해야 한다. A님은 2월 22일, 시설에서 탈출 이후 2월 26일에 탈시설 의사를 밝히는 서신을 신아원에 전달했다. 그러나 피진정인은 당사자의 거부의사를 무시하고 장애여성공감 사무실을 21회나 방문하며 당사자 면담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A님은 ‘만나고 싶지 않다, 신아원에서 나가고 싶다’는 의사를 반복하여 전달하였으나 신아원은 발달장애인은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이유로 퇴사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탈시설 의사를 표현하는 당사자의 의사 외에 대체 어떤 인정과 판단이 더 필요한 것인가? 당사자의 분명하고 반복적인 의사표현에도 탈시설을 지원하지 않고, 퇴사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행위가 바로 퇴소방해이다.

4. 정신과 약물 과다 복용은 ‘의사에게 처방받은 기록이 존재하고 시설 내 필요시 처방약이 별도 발견되지 않음’을 이유로 각하되었다. 그러나 이 사안의 핵심은 처방되지 않은 약을 불필요하게 복용했냐가 아니다. 당사자의 반복된 중단 요청에도 불구하고 강요되었던 약물이 어떤 목적에 의해서 처방되었는가를 살펴야 한다. 피해자는 오랜 기간에 걸쳐 종사자와 의사에게 약 중단을 요청하였다. A님은 시설 내에서 가출·음주·다툼 등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약의 정도가 세졌으며 약 복용에 관한 주도권을 의사가 아닌 ‘원장님’, ‘이사장님’ 등 시설 종사자가 가지고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따라서 인권위는 약 복용과 관련한 의사 처방전 여부가 아닌, 시설에서 본인의사와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처방을 유지할 명백한 이유가 있는지 확인해야 함에도 이에 대한 조사는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실제로 A님이 10여 년이 넘는 기간동안 처방받은 약은 ‘감정기복, 공격적 행동, 자해행동, 충동조절, 알코올 사용 문제’ 등과 관련한 약이다. 그러나 탈시설 이후부터 1년여 기간동안 약을 중단하였지만 해당 문제를 전혀 겪고 있지 않다. 정신과적 약물치료 없이도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없는 것을 근거로 판단할 때 시설에서 처방되었던 기분조절제, 항불안제, 항우울제, 알콜의존성 치료제 등과 같은 약물 투여의 목적이 발달장애인의 행동을 문제화하고 이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처방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든다. 따라서, 거주시설 내에서 어떠한 기준으로 당사자의 행동을 문제 행동으로 판단하고 약물을 처방하였는지, 당사자에게 이에 대한 동의와 설명을 구하지 않고 투약해오지 않았는지 엄밀하게 조사하여 판단해야 한다. 이를 통해 거주시설 내에서 발달장애인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의사와 욕구를 표현하는 특정행동을 문제행동으로 규정하고 정신과 약으로 통제하려는 시도와 관행들이 자행되고 있는지를 인권위는 엄밀하게 살폈어야 한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조사내용은 판결문에 드러나 있지 않다.

A님은 33년을 살았던 시설을 단 한 번도 집이라 부르지 않았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어떤 일상이 거주시설에서 반복되고 있는지 이번 인권위 조사를 통해 밝혀지기를 바랐다. 누군가는 반말을, 누군가는 존댓말을 하는 관계, 호명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관계, 상-하가 분명한 권력관계에서 무시와 차별이 어떻게 일상적으로 자리잡고 있는지, 이런 경험들이 장애인 당사자들의 삶을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지 드러내길 바랐다. 폭행과 착취, 극단적인 폭력 속에서만 비로소 구제되고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 구조에서 일상에서 당사자가 어떤 차별상황에 노출되는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 너무나 필요한 현실이다.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은 시설 거주인에게 과연 충분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안전하게 조사를 받을 조건들이 마련되었을까? 거주인에 대한 조사는 거주시설과의 관계와 공간을 분리하지 않은채 진행되어 피해사실을 말하기 어려운 환경을 방치했다고 볼 수 있다.

신아원은 100명 이상의 장애인이 거주하는 대형거주시설이다. 피해자 A님의 인권침해 경험은 한 개인의 경험이 아니며 지금 현재 신아원에 거주하고 있는 거주인들의 경험이고 일상이다. 인권위는 이번 조사를 통해 전 생애에 걸쳐 거주인의 일상과 발언을 통제하고 평생 시설에서 수동적인 존재로 살아가길 강요하는 시설의 귄력을 분명하게 파악했어야 한다. 다른 선택지 없이 시설 내에서 살아가야 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진술해야 하는 상황을 방치하지 않는 조사방식을 고민했어야 한다. 형사 범죄에 해당하는 사건부터, 형사 범죄가 아니라 하더라도 일상적·관행적으로 반복되어 온 행위가 어떻게 당사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자유를 통제하는 차별행위인지 분명히 판단했어야 한다. 인권침해로 인식되지 않고 관리와 교육 명목으로 유지되는 수많은 차별과 폭력을 중단하기 위해선 시설이란 구조가 곧 장애인을 차별하는 질서임을 명백히 해야 한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생활하는 당사자의 특성과 조건을 반영한 조사과정이 진행되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차별적 관행을 인권침해로 보지 않고 탈시설 권리를 통제한 신아원의 인권침해를 정당화한 인권위의 결정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2022년 2월 10일


장애여성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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