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웹소식지>활동일기 1>발달장애여성 자기옹호활동 리뷰_자기옹호활동? 우리의 세계를 넓혀가는 활동! 

자기옹호활동? 우리의 세계를 넓혀가는 활동!

 

정의로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일이다. 상담소는 매년 ‘발달장애여성 자기옹호활동-공작소’ 활동으로 새로운 장애여성을 만나고 있다. ‘치료회복’으로 호명되는 이 활동은 우리는 ‘자기 옹호’라고 명명한다. 장애를 의료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며 무력한 피해자의 위치로 바라보는 데 대항하는 것이다. 자기옹호활동으로 다양한 장애여성들이 긴 호흡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몸, 장애, 연애, 차별, 독립, 사생활 등에 대해 말하는 힘을 길러왔다. 

 

“자기옹호? 존중? 차별?” 낯선 언어를 만나는 것부터 시작이다.  내 경험을 말하기 주저하거나 가족, 주변인의 말을 하던 장애여성들이 비슷한 일상의 경험에서 감정을 나눈다. 활동의 시간과 관계는 차곡차곡 내 언어와 함께 쌓인다. 처음에는 상담소의 활동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공감의 장애여성학교, 회원모임, 자조모임 등 다양한 조직활동 현장에서 그 경험을 넓혀가고 있다. 자기옹호활동 비밀-연애-독립공작소로 4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발달장애여성들을 만났던 2023년. 하반기 신규 공작소 활동은 3회기란 짧은 시간이지만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함께 느껴보고 싶었다.  

 

공감에서 진행한 학교 성교육 경험 인연으로, 선생님의 추천으로, 그냥 활동이 궁금해서 등 다양한 동기를 가진 장애여성들이 모였다. 마치 다양한 색의 팔레트 같았다. 각자의 색깔과 경험과 지내온 일상의 흔적들을 뽐낼수록 서로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우리가 함께 넓혀갈 활동이 기대되었다. 

 

처음은 낯선 법

 

내 감정과 이야기가 꼭 말로만 전해질 수 있을까? 이번 활동에서는 모래를 활용해 보았다. 그냥 만져보기도 하고,  각자의 만지는 속도와 범위에 따라 달라지는 모래의 소리도 들어본다. 차갑고 부드러운데 뭐 하는 거지? 어색하다. 낯설었던 것은 모래의 감촉만이 아니었다. 처음 온 장소, 처음 만난 사람들, 아직은 어색한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것부터 찾아보았다. 한편에 마련된 인간-비인간, 장소, 문구 등 다양한 소품들을 활용해 나만의 모래상자를 꾸미기 시작했다. 함께 소품을 고르다 보니 취향을 서로 알게 되고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며 찾아주기도 했다. 

드넓은 모래사장은 아니지만 각자의 앞에 놓인 모래상자는 내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담긴 공간,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놀 수 있는 놀이터,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놀러 갔던 바닷가. 각자의 색깔로 장식한 모래상자로 서로의 경험과 일상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궁금한 건 서로 질문하며 조금씩 조금씩 관계를 만들어갔다.

[사진 1] 독립공작소에서 활동한 모래상자.  제목은 ‘가족들이랑 바닷가 놀러 갔을 때’이다. 

[사진 2] 독립공작소에서 활동한 모래상자.  제목은 ‘행복한 나만의 놀이터와 동물의 세계’이다. 

할 말이 있어요

 

“OO님과 얘기하고 싶었어요.” 조심스럽게 꺼낸 한 참여자의 말이다.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호기심과 궁금증은 낯설었던 공간에  조금씩 덧칠하며 조금씩 새로운 색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취향, 하고 싶은 공부, 앞으로의 일상 등을 글로 써보고 발표하며 들어본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조금씩 해보고 싶은 느낌. 굳이 멋있는 말을 하지 않아도 뽐내지 않아도 그냥 내가 나여도 괜찮은 곳. 그리고 말이 아닌 몸짓과 표정으로도 충분히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 

 “내 감정을 말하는 게 솔직히 어려웠어요. 근데 앞으로 더 해보고 싶어요”  

내 감정을 말하기 참 어렵다. 장애여성들은 주변의 관계에서 내 의사와 욕구를 말할 때 지지받지 못한 경험이 많다. 질문 받고 대답하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간의 실패의 경험이 쌓여 감정을 숨기는 게 나를 돌보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내 감정과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다면 몸의 느낌을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단순한 상황 아침에 일어날 때 내 몸은 학교 가기 싫어 몸부림쳐. 속상할 때의 내 몸 추욱 늘어져. 내 몸과 마음의 느낌을 구겨진 천으로 표현해본다. ‘내가 듣고 싶은 가사가 담긴 노래를 들으면 좀 괜찮아져’ ‘몸을 이동하면 훨씬 나아’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나를 돌봤던 경험을 나눈다. 그리고 어렵지만 사실 내가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는지 연습해 보았다. 혼자 조용히 노래 듣기, 몸을 움직여보기 각자의 방법을 함께 따라 해보고, 상대방의 감정은 어떨지 느껴보고, 연결된 천과 천 사이 연습해봤던 속마음을 작게 표현해본다. 이 과정은 떠올리기 싫은 순간을 생각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를 돌보기 위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일지 표현하고 지지할 때 힘든 순간을 잘 뭉쳐서 휙 날려버릴 수 있는 후련한 시간이기도 했다.

 

공감에서 만나요

 

느즈막한 가을에 시작한 짧은 만남이었다. 아직 서로를 알기엔 매우 짧은 시간이다. 올해 자기옹호활동은 마무리되어도 우리에겐 만날 수 있는 ‘장애여성공감’이라는 공간이 있다. 고민이 생겼을 때 함께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었던 순간이, 속상한 감정을 천으로 휙! 던져보았던 몸의 느낌이 떠올리는 것, 자기 옹호활동이 아닐까. 새로운 참여자들과 함께 한 발달장애여성 자기옹호활동은 이제 다가올 봄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활동으로 만나며 이러한 경험을 차곡차곡 같이 쌓아가고 싶다.나와 서로의 세계를 같이 넓혀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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