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케어나 ‘좋은’시설은 필요없다. 탈시설 자격 묻지마라!
진성선 (장애여성공감)
72일의 농성, 우리가 던진 질문
무더운 땡볕과 거센 비바람 속에서도 인천시청 앞 농성장은 72일 동안 자리를 지켰다. 이 시간 동안 우리가 요구해 온 것은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인천시와 강화군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구에게 시설에서 살아갈 것을 강요할 수 있는가.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고, 더 많은 돌봄이 필요해지더라도 그 누구도 시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 갇혀 삶을 통제당하며 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장애인에게만 독립은 과도하고 까다로운 검증을 거쳐야 하는 높은 기준이 존재한다. 탈시설을 말할 때마다 행정은 어김없이 비용의 논리를 내세우고, 당사자에게 자립할 자격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활동지원 현장에서 만나는 보호자들은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도록 평생 돌보다가, 힘에 부치면 시설에 보내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것을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는 국가와 지자체가 공적 돌봄의 책무를 완전히 방기한 채, 그 부담을 온전히 가족에게 떠넘겨 온 공공돌봄 부재가 낳은 구조의 결과이다.

시설에서 시설로 떠밀리는 삶
국가가 돌봄 책임을 방기해 온 결과는 통계로 증명된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50인 이상 대규모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이하 조사)는 거주시설의 구조적 문제를 명확히 보여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설 입소자들의 평균 입소 기간은 무려 24.3년에 달했다. 20년에서 30년 동안 시설 안에 갇혀 삶을 보낸 이들이 가장 많았으며, 72명은 50년 이상을 시설 안에서 살아왔다. 태어나 평생의 삶을 통제와 격리의 공간에서 보내온 것이다.
더욱 심각한 건 인권참사가 발생한 시설에 대한 지자체의 대책이다. 반복되어 온 시설 내 성폭력과 인권침해의 연장선에서 색동원 인권참사가 발생했다. 이미 색동원 거주인 몇몇은 폭력이 발생한 시설에서 또 다른 시설로, 지금의 색동원으로 옮겨졌다.
문제가 발생하면 시설을 폐쇄하고 지역사회로의 자립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에서 시설로’ 당사자를 떠밀며 책임을 회피하는 행태는 국가가 시설 수용 체계를 해체할 의지가 전혀 없음을 증명한다. 국가는 참사가 터질 때마다 임시방편 조치만 취한 뿐, 시설 중심의 수용 정책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없애지 않고 있다.
자격이 아닌, 필요한 지원을 보장하라
인천시와 강화군은 33명 전원 탈시설 요구에 대해 ‘당사자가 자립할 의사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보호자가 반대한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왜 자립욕구조사가 탈시설할 ‘능력’을 선별하는 도구로 작동하고 있는가. 이는 거주시설에 오랜 기간 살아온 당사자의 삶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기만적인 행정이다.
평생을 통제된 환경에서 살아온 이들은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상상하기 어려울 수있다. 타인에게 결정권이 위임된 삶을 살아온 이에게 결정할 수 있는 영역, 가능한 조력 체계를 구체적으로 알리고 당사자와 이 과정을 겪어보질 않고서 당신이 시설 밖에서 살아갈 수 있겠느냐 묻는 것은 부정의하다. “자립할 의사가 있느냐”는 단편적인 질문방식은 시설이란 위계적 구조를 은폐시킬 뿐더러 당사자의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을 읽지 못한다. 당사자와 대안을 모색할 의지가 없는 국가의 태만이 당사자의 탈시설 권리를 차단하고 있다. 자립욕구조사에서 필요한 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그리고 그런 것들을 하기위해서는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와 같은 구체적 질문이다.
피해를 입증하고, 자립을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구조는 젠더폭력을 경험한 장애여성을 다시 가족이나 시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친족에 의한 피해를 경험한 장애여성 A님은 가해자와 분리하여 안전한 일상을 도모하려했다. 그러나 혈연가구단위의 수급 제도와 세금감면을 목적으로 가족이 등재한 A님 명의의 재산은 집주소 등의 개인정보가 가족에게 노출될 위험을 초래했고, 지원 대상에서 제해질 수 있다는 불안을 갖게 했다. 야간 모니터링이나 신변 처리가 필수적인 당사자라 할지라도, 의학적 기능으로 활동지원 시간을 책정하는 현행 종합조사표의 한계로 월 150시간 남짓의 활동지원시간밖에 받지 못한다. 지원주택 입주 첫날, 야간 지원의 공백이 발생했을 때 활동가가 함께 하며 돌봄 공백을 메우는 것만이 대안이었다.
주거, 생계, 활동지원, 의료 등 지원이 필요할 때 ‘관할이 아니다’, ‘사전 신청이 불가능하다’는 행정의 형식적인 답변 속에서 당사자는 눈치보며 자신의 피해 맥락과 삶을 반복해서 증명하고 있다. 당사자의 삶이 다시 시설화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립 능력을 ‘선별’하는 조사가 아니라, 안전한 주거와 돌봄 속에서 안정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지는 통합 자립지원체계다.
몸으로 보여주는 돌봄
최근 독립을 시작한 A님은 자신만의 공간이 생기고, 시장에 가고, 좋아하는 옷을 쇼핑하며 설거지나 빨래, 정리를 직접 해나가는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구어 소통이 어렵고 일상적 조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흔히 시설에 남아야 할 명분이 되었다. 그러나 A님은 그 명분이 틀렸다는 걸, 오랜 시간 몸으로 살아오며 쌓은 힘으로 보여주고 있다. 장애로 살아온 자신만의 노하우와 계획으로, 독립생활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다. 충분한 활동지원 시간, 안전하고 독립적인 주거 공간과 소득, 다른 사회적 관계망의 담보될 때 지역사회에서 동료로 만날 수 있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다른 형태의 시설화를 경계한다. 탈시설 이후 우리가 당사자의 모든 삶을 책임지거나 관리하지 않기 위해서다. 부재한 지원체계와 자원을 마주할 때마다 당사자에게 최선의 지원과 조력을 할 수없는 것에 절망 보다 때로 갈등하고 실패하지만, 책임을 넓히며 서로 연습해 나가는 과정을 함께 겪고 싶다. 탈시설 운동은 단순히 거주 공간을 이동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자기 삶을 넓혀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시 시설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깊이 기억하고 싶다. 시설에 살아가는 당사자들과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색동원 농성 투쟁의 성과로 인천시는 색동원 거주인 33명 전원 자립지원을 약속했다. 인천시는 색동원 거주인 모두에 대한 실질적인 자립생활 계획을 수립하고, 내년도 예산 편성이라는 구체적 행정으로 답해야할 것이다. 단 한 명의 장애인도 시설에 남겨두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노동하고 활동하며 일상으로 만날 때까지 우리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