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웹소식지>활동일기 1>낙태죄 폐지 2주년 공동행동 리뷰- 장애여성에게도 유산유도제가 필요하다.

[낙태죄 폐지 2주년 공동행동 리뷰] 장애여성에게도 유산유도제가 필요하다.

 

고나영(장애여성공감 활동가)

 

낙태죄 비범죄화, 안전한 임신중지는 가능한가?

2019년 4월 11일 형법상 ‘낙태죄’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다. 이후 입법 공백으로 2020년 12월 31일 ‘임신중지’는 공식적으로 비범죄화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와 국회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제도를 만들지 않고 있다. 법적으로 낙태죄가 가능해졌음에도, 많은 여성들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과정을 밟는 것조차 어렵다. 국가를 향한 우리들의 분노 섞인 경험은 4·9 공동행동 기자회견 내내 용산역 광장에 울려 퍼졌다. 유산유도제는 임신초기 효과적인 비수술적 임신중지 방법이자  안전하고 저렴한 임신중지 약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입법 공백’을 핑계로 유산유도제 도입 및 건강보험 적용 등을 미루었고, 식약처는 약물 승인을 하지 않았다. 결국  2022년 12월, 제약회사가 유산유도제 신청을 자진 철회하며 유산유도제 도입은 무산되었다. 이에 따라 임신중지가 가능한 병원을 찾는 과정에서 겪는 차별과 수술적 임신중지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감소할 것이란 기대도 무산되었다. 2023년 4월 9일 현재까지 무관심, 무응답으로 반응하지 않는 국가에 우리는 다시 한번 목소리를 모아 소리쳤다.

돌봄이 필요한, 귀찮은 존재

산부인과 진료를 원하는 장애여성들은 여전히 갈 수 있는 병원이 적거나 진료대에 올라가지 못해 진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겪는다. 진료 시 필요한 조력을 의료진에게 요청할 때 의료진의 조력 의사 및 의지에 따라 진료가 가능할 수도, 아예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걸 감안하며 진료를 받는다. 전문용어를 기반으로 한 비장애인 중심 의료시스템에서 구어소통이 어려운 장애인, 발달장애인 등은 진료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기 어렵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로 감수한다. 최첨단 기계가 있다 한들 자신의 몸과 장애에 맞지 않는다면 병원시설에 몸을 맞추거나 의료진의 차별과 무례를 마주하며 진료를 보게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병원을 가는 것, 진료대에 눕는 것, 체중을 재는 것조차 어려운 현실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은 매우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 국가는 과연 이해하고 있을까? 장애여성의 성과 재생산의 권리, 건강권이 보장되는 과정은 물리적인 환경, 제도적인 지원과 함께 몸의 돌봄/조력을 필수적으로 동반한다는 의미를 정말 알고 있을까?

 

장애여성들은 산부인과 진료를 위해 주변인(가족, 활동지원사, 시설종사자 등)과 함께 병원에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의료진이 전달하는 모든 정보는 일방적으로 보호자에게 전달되고, 임신중지 등의 중요한 결정도 보호자가 결정한다.(혹은 그럴 것이라 단정한다.) 장애여성은 발언권/결정권이 없거나 있어도 묵살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너무 쉽게 장애여성의 몸은 사회의 필요에 따라, 보호자의 결정에 따라 정해진다. ‘알지 못하니까, 알아도 스스로 할 수 없으니까.’ 입 밖으로 표현되지 않는 언어들과(대놓고 표현하기도 한다.) 안전과 보호를 위해 대리되는 결정들은 같은 공간에 있는 장애여성의 존재를 지운다. 

 

물리적인 접근성뿐만 아니라 장애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 건강권을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주변인/의료진의 장애에 대한 이해,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다. 접근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하지 않고, 장애여성의 몸을 지나치게 복잡해하거나 단순화하지 않고, 장애여성이 스스로 몸의 결정권을 행사할 때 귀찮은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같이 활동하는 장애여성 동료는 의료기관, 의료진의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₁“제발 시선이 나를 향하면 좋겠어요.···저의 이야기를 듣고 날 보고 대답을 나에게 하는 곳이면 좋겠어요. 너무 단순한가요? 이 단순함이 왜 이리도 지켜내기가 어려울까요?” 이 단순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장애여성으로서 존중을 기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나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어쩌다 운 좋게 마주친 ‘친절한’ 의료진에게만 전적으로 의지할 수도 없다. 거듭되는 실패 속 발생하는 피로와 높은 의료적 비용은 오롯이 장애여성 개인이 책임지고 감당해야 한다. 가족과 사회는 이를 보며 ‘돈잡아 먹는 몸’, ‘예산 먹는 몸’이라 찌푸린다. 무엇이 변해야 할까? 지금의 구조와 환경이 이 실패의 원인을 장애여성의 탓으로 가져가도록 만든다는 무력감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₂장애여성의 반성폭력운동은 반차별운동이다. 

나는 장애여성이 ‘장애인’으로만 규정되는 굵직한 순간은 장애여성이 공적공간에 등장해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반성폭력 운동 현장에서 장애여성은 ‘장애의 무능함(항거불능)’을 증명해야하고 활동지원 현장에서는 ‘장애로 인한 기능상실’을 증명해야하고 장애인운동 현장에선 ‘장애 당사자성’을 요구받는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취약한) 여성’임을 증명하지 못하면 장애여성의 언어들은 ‘승인’받지 못한다. 이러한 활동 현장의 고민은 일상적인 공간인 병원, 은행, 마트, 주민센터 등에서도 다르지 않다. ‘누가 장애여성의 목소리를 판단하고 승인하는가?’는 질문하지 않는다. 

 

장애여성의 성과 재생산권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₃국가와 여론은 저출산 시대 인구 감소에 따른 (경제/생산 인력 감소)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말하면서 ₄비장애여성들이 주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인 냥 임신/출산/양육을 강요하고 있다. 반면 장애여성의 임신/출산/양육 권리에는 관심조차 없다. 장애여성의 임신중지 혹은 임신과 양육 등을 상상하지 않고, 당사자가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고자 할 때 사회는 누군가의(주변인/의료진) 말을 들으라고 강요한다. 비/장애여성에게 내재된 차별은 더 나은 진료를 가로막는 건강권 침해로 이어진다. 만약 그 여성들이 장애여성, 청소녀, 이주여성 등 사회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소수자들이라면 더 많은 차별 장벽을 넘어야하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성과 재생산권리, 건강권은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개인의 권리이자 공공보건의료 체계 보장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책무임에도 국가는 방기하고 있다. 

 

방기가 아닌 방안을 추진하라

낙태죄 헌법불합치 4년, 그리고 임신중지 비범죄화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여성들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방법을 보장받기 위해 충분히 기다렸다. 국가는 지금 당장 유산유도제를 도입하고 임신중지 건강보험 적용을 통해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 성과 재생산권리를 건강권으로 보장하기 위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국가는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하라!

유산유도제 도입하고 필수의약품 지정하라!

입법공백 핑계말고 건강보험 적용하라!

모두를위한 포괄적 성교육 마련하라!

임신중지 방치말고 의료체계 구축하라!

비밀상담 이제그만 공식정보 제공하라!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끝까지 싸우자!

성재생산 권리보장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하라!

국가는 책임있고 신속한 대책을 마련하라!

임신중지권 외면하는 복지부 / 식약처 / 정부 / 국회를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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