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웹소식지>장애여성운동의 현장> 차별을 드러내며 일상을 변화시키는 활동 –<22회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분투기 –

차별을 드러내며 일상을 변화시키는 활동

-<22회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분투기 – 

유진아(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장애인의 날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2023년 4월 20일은 22회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었다. 오이도역 추락 참사가 있던 2001년을 기점으로 동정과 시혜를 거부하며 권리를 찾고자 했던 날들이 22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43회 장애인의 날이기도 했던 이날은 권리와 시혜가 여전히 넘나드는 현장이었다. 한 켠에서는 시설과 기관으로 과자 상자가 오가고, 사회복지 현장 노동자들을 치하하기도 하였다.  이편에서는 지하철과 도로 위에서 휠체어 바퀴로 날뛰는 혐오와 삶을 위협하는 차별에 맞서고 있었다. 최소한 이켠의 거리에선, 휠체어는 혐오의 대상일지언정 동정과 배려의 대상은 아니었다. 

 

 22회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엔 420 투쟁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인 2,500여 명이 참석했다. 전철에서, 길거리에서 욕설과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던 지난 일 년을 보내며 우리의 투쟁은 더 강인해지기를 요청받아 왔는지도 모른다. 동정을 벗어버리고 우리가 스스로의 모습으로 광장에 선 순간, 권리가 삭제되는 일상을 함께 경험해 온 덕분에 더 이상 뒤돌아 갈 수 없는 덕분이기도 하다. 

 

지겹도록 들었던 “당신들 때문에 왜 우리가 피해를 보아야 하느냐”는 시민들의 외침은 ‘피해’와 ‘차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의 삶이 싸워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적어도 장애인도 같은 공간에 함께 살고 있음을 분명히 알아가고 있다. 시설에서 또는 집 안에서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았던 그림자 같은 삶이 아니라, 누군가의 출근길을 멈추고, 서울시장의 분노를 사고, 욕설을 먹어가며 길거리를 맨손으로 기어서라도 불평등한 종합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당신들처럼 이동하고 교육 받고 노동 하며 사람같이 살아가고 싶은 시민임을 말하고 있다. 

141일 177명. 숫자에 새겨진 이야기

2022년 3월 30일부터 141일 동안 177명이 아침 지하철에서 삭발했다. 장애인 당사자의 삶에 기반한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는 목소리들이 매일같이 이어졌다.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주거 보장을 위한 예산,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만큼 쓸 수 있는 활동지원 시간, 최저임금 적용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보호작업장의 노동이 아닌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노동할 수 있는 현장을 위한 예산 등등…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는 비장애인들이 너무 당연해서 권리로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의,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들이었다. 하지만 정부와 기재부의 답변은 늘 동일했다. 예산이 없다. 그 망할, ‘돈’이 없다. 당신들 ‘의견’을 들어주려면 나라가 망한다.

 

장애여성활동가는 지하철 선전전 결합 시간인 아침 8시에 맞춰 현장을 지키기 위해 전날 혜화역 근처에서 숙박을 했다. 지방, 하물며 경기도에 사는 이도 아니다. 같은 서울지역 다른 구에 거주하는 이다.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하고 싶어도 새벽에 활동지원사가 집에 오지 않거나, 이른 아침 외출을 조력해 줄 주변인이 없으면 집에서 혜화역까지 아침 8시에 도착하지 못한다. 붐비는 출퇴근 시간의 인파를 뚫고 휠체어를 탈 수 없다. 그렇기에  야간시간 활동지원사를 섭외하며 일정을 조율하고,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숙소를 잡고, 긴 밤 집에 남을 아이들을 누가 챙길지를 갈등을 감수하며 상의한다. 아침 30분. 이 짧은 시간을 투쟁하기 위해 누군가는 며칠의 감정노동과 일정 조율을 한다. 삭발의 현장에서 욕설과 무거운 침묵과 찌푸린 눈살들은 이런 일상을 알지 못한다. 지금, 내 눈앞에서 출근을 방해한다고 여겨지는 휠체어만을 볼 뿐이다.   

 

그렇다면 노동시장은 어떨까?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발표한 장애인 통계집을 보면, 장애남성의 고용률은 77.8% 장애여성의 고용률 22.2%이다. 그마저도 평균소득 118.9 만원, 고용 형태 78.5%가 비정규직 형태로, 매우 적은 비율의 장애인, 그중에서도 매우 적은 배율의 장애여성만이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매우 불안정하고 저임금의 노동을 감당하고 있다. 공감의 한 발달장애 회원은 7년째 동일한 사업장에서 일하면서 여전히 단순업무 ‘청소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수한 형태의 카페가 아닌 이상 몇 년을 바리스타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도 ‘청소직’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저임금적용제외 사업장인 보호작업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장애여성의 속도를 존중하고 생산성에 기반한 노동시장은 없다. 노동시장은 경제적 독립뿐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내 자리를 말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상황은 어떠할까? 활동지원바우처 시간이 모자라 가족과 원치않은 동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독립하고 싶지만, 활동지원 시간이 모자라 야간시간 활지사를 구인할 수 없다. 독립해야만 증가하는 바우처 시간은, 심사 과정이 몇 달이 걸릴지도 지원시간이 증가할지도 명확하게 담보할 수 없다. 담보 없이  독립을 속행하기에는 너무 많은 변수와 위험부담이 있다. 이 과정에서 ‘가족’의 동의는 필수적이다. 동의 없이 자원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독립은 또다시 좌절된다. 서울시는 최근 ‘활동지원급여를 적정하게 받지 못하는 수급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기존의 수급자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애초 ‘사지마비’라는 의료적 심사를 거쳐 서울시 활동지원 급여 수급자를 선정한 서울시가 이 기준을 재조정하겠다는 의미인가? 예산에 맞춰 당사자의 욕구를 삭제하겠다는 에두른 표현일까?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예산을 증액하는 방식이 아닌, 기존의 예산을 탈취하여 재배분하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탈시설당사자들을 우선으로  전수조사를 이미 끝낸 서울시는 5월 10일까지 조사에 응하지 않은 수급자의 권리 박탈을 예고했다. 투쟁은 또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활동이 변화시키는 것은 사회가 아닌 활동가 자신

장애인들이 거주시설, 요양/정신병원 등 제한된 방식으로 제한된 공간에 머무를 때, 그것이 비장애인의 일상을 위협하거나 침범하지 않는다면 장애인의 존재는 사회적으로 ‘용인’된다. 보호의 대상/복지의 수혜자 그사이 어디쯤 위치하면  안전한 존재로 ‘승인’된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비장애인인 ‘나’의 일상 안에 포함되고 혹은 침범된다고 여겨질 때, 내가 사는 집 근처에 특수학교, 장애인복지관이 세워져서 내 아이와 같은 반이 되는 장애인 아이가 생길 때, 그리고 내 바쁜 출근길 전철 안에 같이 타자고 들어올 때. 즉, 우리 사회 보편적인 시공간에 들어갈 때는 불편함을 표현할 수 있는 약간의 계기만 주어진다면 분명하고 직접적인 차별은 날이 서게 장애인, 나와 같은 동등한 시민이라 여겨지지 않는 존재들을  향한다. 

 

“이 방법은 잘못된 것 같다.”

“나가서 해라. 왜 여기서 시민들 방해하냐”

 “당신들 권리만 중요하냐, 내 피해는 어떻게 보상할 거냐”

 

탑승 지연 행동을 하는 지하철 투쟁 현장에서 오늘도 수많은 소리를 듣는다. 우리도 궁금하다. 이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은 무엇일까? 진정과 호소, 시비 예산 확대, 권리보장을 위한 법/조례 제정 요구 등 수많은 공적인 서면, 면담 절차를 거쳤던 수년간의 시간동안  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을까? 이곳을 나가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 걸까? 시설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한 평의 방에서 그저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말하는 이동, 교육, 노동의 권리는 비단 장애인만의 권리가 아니다. 20년 이동권 투쟁을 통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장애인복지법 및 시행규칙」>을  개정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로 지하철 역사 내에 엘리베이터가 지어졌다. 이렇게 지어진 엘리베이터와 경사로를 장애인만 쓰는가?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된 대중교통의 현장은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시민 누구나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다. 2006년 잠실대교를 기어 만들었던 활동지원제도는 당시 1급 장애인만 한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2019년 장애인등급제 폐지 이후 해당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이들은 원칙상 모두 신청할 수 있다. 권리의 실현은 우리가 몸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세상에 던졌을 때 조금이나마 이루어졌지, 시설, 집 등 고립된 공간에 갇혀 있을 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목소리를 내며 숨죽이지 않는다. 

 

장애인차별철폐를 이야기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운동의 현장을 지키고 가꾸던 우리는 권리가 실현 되어 가는 22년이란  시간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확인했던 것은, 바뀐 것은 제도가 아닌 권리를 찾아가는 각자의 삶의 태도였다. 올해 공감은 창립 25주년을 맞이한다. 조미경 대표의 더욱 심화되어 가는 장애와 노화를 다시금 새롭게 배우고 수용하며, 삶의 대부분을 장애여성운동에 함께 했던 이진희 대표의 당사자성을 내외부적으로 세워나가야 한다. 동료의 의미를 다시 정확히 실천해야 한다. 소리가 들리지 않고 대부분의 언어를 상실한 조미경은 어떤 하루를 보내는가, 그이와 소통할 때 어떤 것들을 시도하고 고민해야 하는가, 왜 이 운동은 특정 누군가의 운동이 아닌 우리의 운동인가를 지금의 동료들과 쌓아나가야 한다. 그 가운데 우리가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활동이 바꾸는 것은 제도와 사회가 아닌 활동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작은 일상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변하던 순간들은 우리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때, 익숙한 관성을 깨고 내 이야기를 꺼낼 때, 그때야 비로소 사회가 아주 미세하게나마 바뀌어 나감을 기억한다. 활동은 나의 하루가 바뀌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몸에 익히며 지속 가능한 활동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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