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웹소식지>장애여성운동의 현장> 장애인을 보호하는 규범적 가족과 장애인을 감금하는 거주시설을 해체하기 – 평등한 동반자 관계를 맺을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을 보호하는 규범적 가족과 장애인을 감금하는 거주시설을 해체하기

– 평등한 동반자 관계를 맺을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고나영(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장애여성운동에서 생활동반자법의 의미

한국 가족 제도는 이성애 혼인, 혈연으로 이루어진 관계만 ‘가족’으로 인정한다. 정상가족의  틀을 벗어난 제 사람들은 다양한 파트너십을 상상하고 도전할 권리를 차단당했다. 장애여성은 가족이 아닌 관계를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원가족, 이성애 혼인, 거주시설은 평등한 동료/동반자/파트너 관계를 존중하고 보장하기보다 보호주의에 기반한 억압과 통제가 벌어지는 현장이다. 가족에게 떠넘겨진 부양의무와 보호의무는 장애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쉬운 구조를 만들었고, 비장애인 가족구성원들의 희생을 전제로 돌봄이 이루어지게 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장애인은 오랫동안 집과 시설에 감금된 삶을 강요받아 왔다. 그렇기에 ‘서로 존중하며 돌보고 부양할 수 있는 생활동반자’적 관계를 권리로서 보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생활동반자법이 모든 것을 한 번에 이뤄지게 하진 못하겠지만, 가족을 벗어나는,  일방적으로 주어진 규범적인 관계가 아닌, 내가 원하는 관계와 일상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하지만 현재 발의된 생활동반자법은 기존의 가족관계의 틀을 확장하는 정도의 법안이라는 점에서 모두를 위한 가족구성권, 다양한 삶을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본 법안으로 국가가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보호받아야 한다고 인식되거나 권리를 스스로 말할 능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장애인, 청소년, 난민 등 소수자들의 다양한 생활동반자관계를 어떻게 권리로서 보장하고 제도적으로 폭넓게 반영할 것인지 적극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2023년 5월 용혜인의원이 대표 발의한 생활동반자법안의 각 조항을 살펴보며 장애/여성운동 현장의 상호의존과 돌봄, 선택/결정권,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반성폭력 운동, 탈시설과 IL운동 등의 문제의식을 나누고자 한다.

 

장애인은 생활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법안의 정의(제 2조)를 보면 생활동반자관계는 1:1 관계를 전제한다. 혼인관계 혹은 생활동반자관계를 이미 맺은 경우에는 다른 생활동반자를 만드는 것을 금지한다.이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가족구성권 보장을 요구하며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운동의 취지와 방향에 맞지 않다. 상호 공유하는 친밀성, 동반자 관계는 1:1이 아닌 2명 이상의 관계일 수 있고, 성애적 관계가 아닐 수도 있다.장애여성 동료들 간 파트너십은 여기에 포함될 수 없는 것일까? 생활동반자관계가 성애적 관계를 기반한 협소한 관계에 그치지 않도록 긴장감을 가지며 다양하게 관계를 상상하고 고민해야 한다. 

법안은 생활동반자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오직 ‘성년’으로 한정한다. 청소년, 장애인 등 의사결정권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생활동반자관계를 구성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피성년후견인’이라는 규범화된 기준은 맞지 않다. 생활동반자관계의 결합과 해소에서 성별, 연령, 장애 등 포괄적으로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제7조 2항에 당사자의 결정을 권한을 가지고 대리하는 방식이 아닌 지원하거나 조력하는 시스템을 포함해야 한다. ‘제7조 생활동반자관계 형성의 능력’이 아닌 ‘제7조 생활동반자관계형성의 차별금지’로 해당 조항의 제목이 바뀐다면, 당사자의 능력이 아니라 상호적인 고민이 함께하는 관계를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가부장제에 기반한 젠더폭력 탈출을 모색하는 생활동반자관계

제8조(생활동반자관계 형성의 금지) 및 제14조의 3호(제8조를 위반한 경우)는 젠더 폭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장애여성들이 가정폭력 상황에서 혼인관계를 해소하기 어렵거나 해소가 지연되는 이유는 경제적 사유, 추가적인 폭력의 두려움, 상대방의 비협조, 자녀의 문제, 폭력의 내재화 등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해소가 어려운 중요한 근간은  장애여성이 혼인관계 외에 택할 수 있는 다른 사회적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가부장제에 기반한 폭력과 인권침해가 발생해도 장애여성은 유일한 사회적, 경제적 대안인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 국가지원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피해를 입증해야하는 수사-법적 기준 중심의 피해 입증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생활동반자관계 모색은 쉽지 않다. 기존의 맺고 있는 관계에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생활동반자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면, 그리고 촘촘한 사회적 제도와 지원이 뒷받침 된다면 가족관계/젠더폭력으로부터 탈출할 ‘탈가정’ 가능성 또한 적극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시설수용을 강화하는 장애인복지법, 가구 중심 장애인 지원제도의 한계

장애인에게 활동지원과 기초생활수급권은 생존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현재 사회복지제도상 생존/재생산권리와 가구, 가정 상황은 제도적으로 붙어 있다. 나의 독립이 가족의 경제적 능력, 재산 유무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다. 현재 발의된 법안은 장애인복지법 및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에 대한 내용이 없어 가구로 묶이는 장애인 지원 제도의 문제점을 뾰족하게 찌르지 못한다. 부칙을 통해 생활동반자관계에서 제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규정하더라도 가족에 준하는 역할만 있고¹ 이에 따른 의무는 없을 때, 당사자가 독립된 주체로서 경제권/생존/돌봄 권리를 갖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또 다시 생존과 돌봄에 대한 책임은 국가의 역할이 아닌 가족+생활동반자의 역할과 권한으로 전가될 것이다. 또한 이 법안에는 장애인복지법에 대한 언급이 없다. 장애인복지법 제 58조는 일반 가정에서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의 경우 시설이 서비스와 지역사회생활을 지원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시설 유지 근간이 ‘가정’에서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이며, 장애인을 의사결정 자율성의 한계가 있는 존재로 분류하는 것이다. 국가는 장애인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가정’에서 장애인거주시설(이하 시설)로 위임하고 시설장은 ‘가족’을 대신하여 입퇴소 결정을 포함한 거주인의 생사여탈권을 가진다. 시설의 존재, 시설장의 권한 유지, 성년후견인이 존재하는 한 시설 거주 장애인이 생활동반자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생활동반자법이 시설화된 관계를 해체하고 내가 원하는 삶과 관계를 상상할 수 있는 제도로서 실현되려면 반드시 탈시설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당사자가 생활동반자관계를 형성하고 싶을 때 이를 지원할 제도적 기반과 조력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 장애인의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위한 실천은 시설화된 삶을 강요하는 가구 중심의 지원제도를 완전히 해체하는 동시에 시설 폐쇄 및 탈시설지원법 제정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가능하다. 

 

보호자가 아닌 동반자가 필요하다

‘장애인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다. 장애인도 생활동반자로서 평등하게 관계 맺을 수 있다.’ 이 문장의 실천을 위해서는 기존의 규범화된 기준에서 생활동반자관계를 형성하도록 제안하는 것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생활동반자관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포괄적 권리가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 넓은 의미의 동료성과 연대, 평등한 관계 실현이 가능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서로의 몸에 익숙해지고, 뒤섞이고, 오염되기도 하면서, 스며드는 관계²가 보장되고, 다른 이들의 안전을 위해 보이지 않게 살라는 명령의 거부와 불안하고자 하는, 불안하고 싶은 욕망³의 실천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모두를 위한 생활동반자법’은 그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본 법안 제 3조(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2항에서 생활동반자관계를 형성한 국민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실천을 진심으로 기대한다. 장애여성공감도 연대와 실천의 끈을 놓지 않고 성별, 연령, 장애, 인종 등 평등한 생활동반자관계, 모두를 위한 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하는데 함께할 것이다.

¹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22조 제1항,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27조의 3 제1항 (장기요양보험 및 수급권의 대리신청)

² 진은선, ‘아무것도 오염되지 않는 깔끔한 관계는 불가능하다’, W/OF, 2022.11.9,  https://wof-nextjs.vercel.app/?artist=12 

³ 이진희, ‘국가권력을 가해하는 불안과 즐거움을 욕망할 권리를 고민하며’, 숙명인문학연구소 HK+ 국제학술대회,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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