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웹소식지>기획> 여성혐오범죄, 장애여성차별에 맞서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여성혐오범죄, 장애여성차별에 맞서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여름

 

신당역 역무원이 스토킹범에 의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지 한달이 되지 않은 시점에도 정부는 여성가족부폐지를 담은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발표했다. 여성가족부 대신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구조적 성차별로 인한 폭력의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 절실한 상황에서, 인구가족양성평등이라는 이름은 현 정부가 무엇에 집중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부족 문제 해결을 우선하겠다는 것.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한정하고 기능화, 대상화하고, 돌봄노동을 가족 내 여성의 역할과 책임으로 한정하는, 다양한 성정체성의 존재를 부정하며 성소수자들을 배제하는, 정상성/가부장중심의 관점을 고스란히 담은 폭력의 정치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분노의 시작 ‘어디서 감히’ 

 

혐오의 대상을 향한 폭력의 시작점의 말이다. 이 말을 내뱉는 위치에서는 상대방을 자신보다 하등, 열등한 존재로서 그 관계 사이에는 평등, 존중이라는 것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래서 낮은 위계에 위치하는 사회적 약자에게는 지켜야 하는 허용 범위가 있고 상대방의 뜻을 거스르지 않아야 보호 받을 수 있다. 그 범위를 ‘감히’ 넘어서려고 할 때 발생한 폭력의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폭력의 원인이 있다는 궤변과 ‘오죽하면 그랬을까’하는 가해자에게 감정이입하는 폭력이 우선된다.  폭력이 발생하는 권력의 불균형과 사회적 약자의 얼굴과 목소리, 정체성은 지워지고 개별의 행위 문제로, 갈등의 문제로 구조적 차별을 사라진다.

 

피해자를 탓하는 말은 차고 넘친다. 신당역 여성혐오범죄 사건 관련하여 이상훈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시의원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까 여러가지 폭력적인 대응(스토킹, 불법촬영)을 남자직원(가해자)이 한 거 같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피해자가) 자기 자신을 얼마나 보호할 수 있는지 충분한 상담을 받았다면 자신에 대해서 보호하는 조치에 대해서 훨씬 더 강화했을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비극적인 사건은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했다. 장애인 돌봄현장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형사사건을 수사하는 담당형사 또한 “저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이런 사건을 형사고소 하는 게 참…그러면 우리나라에서 누가 중증장애인을 돌보겠습니까?” 라며 중증장애인을 돌보는 가족의 노고를 고심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하는 일체의 행위는 폭력이다. 폭력에 순응하고 침묵하는 행위조차 폭력의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사회가 폭력의 정당성을 찾으며 권력이 발생하고 유지되는 구조의 문제를 흐리는 것은,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고 누구를 위한 일일까, 질문해야 한다. 이는 좋아하는 마음을 받아주지 않은 여성,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은 여성, 중증장애로 인해 활동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을 시설로 버리지 않고 직접 돌보는 가족의 폭력을 참지않고 경찰에 신고한 장애여성을 우리사회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한 답으로도 연결된다.  

  

폭력의 현장을 투쟁의 현장으로

 

중증장애여성이자 인권활동가인 서지원은 본인의 유일한 표현수단인 머리카락을 표현의 장치로 활용하겠다 선언하며 장애인권리보장을 요구하는 삭발투쟁에 나섰다. 자신의 삶을 본인이 원하는대로 계획하지 못하는 삶을 더 이상 살지 않겠다 말했다. 장애인이라서 보호가 필요한 시설/집에밖에 살 수 없고,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대해 장애인이 어디 갈데가 있어서 지하철을 타려고 하냐,  한가한 낮시간에 나오지 않고 왜  아침부터 나와서 비장애인 출근길을 방해하냐부터 세상이 어떻게 한번에 좋아지겠느냐, 당장 어쩔 수 없지 않느냐, 현실을 고려하라는 무책임한 발언을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우리는 매일 듣는다. 이러한 무수한 말들 앞에서 지하철에서 각자의 집과 일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이동할 권리, 노동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탈시설할 권리,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등 주체로서 필요한 내용을 외치며 나아간다.  

 

신당역 피해자는 피해 직후에도 비상벨을 눌러 범인을 검거하도록 했다. 시민들의 불안이나 추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 또한 마지막 탄원서엔 “누구보다도 이 사건에서 벗어나고 싶은 제가, 합의 없이 오늘까지 버틴 것은 판사님께서 엄중한 처벌을 내려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법원에 제출했다. 그녀는 자신의 자리에서 불안과 위험을 감수하며 권리를 잃지 않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했다. 지금 그녀는 어디에 있는가? 왜 여전히 그녀를 탓하는 발언을 들어야 하는가?  장애/여성, 성소수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우리의 삶을 제한당하지 않기 위한 하루를 살아낸다. 목숨으로 이어지고 있는 연대와 요구의 목소리에 정부는 제대로 듣고 답해야 한다. 죽음이 또다시 헛되이 묻혀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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