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웹소식지 > 현장리뷰 > 2026년 놀이터를 마치며, 이어가고 싶은 것들

 

경하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상담소는 발달장애여성들이 자신의 삶과 관계를 이야기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자기옹호의 힘을 함께 만들어가는 활동을 여러 해 이어오고 있다. 올해의 자기옹호활동 <놀이터>(이하 놀이터)는 몸의 느낌과 감정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4월부터 7월까지 우리는 월경과 섹슈얼리티, 관계에서의 욕구와 표현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몸의 기분을 그림으로 그려보기도, 눈치를 보느라 필요한 것을 말하지 못하는 순간을 연기하기도, 가족과 외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냄새나고 더러운 분비물에 관한 사연을 익명으로 적어 함께 읽거나, 다양한 이미지를 오려 이상형과 꿈꾸는 데이트를 꾸며본 날도 있었다. 연애에 관한 질문들을 놓고 1부터 10까지의 스펙트럼 위에 각자의 생각을 표시하며 그 이유와 서로 다른 기준을 이야기하고 질문해 보기도 했다.

(사진 1) 모임 첫날, 함께 책상에 둘러앉아 전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TV 화면에 “몸의 기분으로 만드는 현수막, 월경, 섹스, 연애”라고 적혀 있다.
(사진 1) 모임 첫날, 함께 책상에 둘러앉아 전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TV 화면에 “몸의 기분으로 만드는 현수막, 월경, 섹스, 연애”라고 적혀 있다.

 

활동을 돌아보며 한 장애여성은 관계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화났던 기분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니 “속이 풀렸다”고 했다. 다른 이는 스킨십에 대한 호불호를 살펴보며 평소 “내 기준이 애매했는데 그걸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대방과 다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장애가 없는 사람과 만날 때 서로 어떻게 맞춰가야 하는지 궁금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쪽도 기준이 있잖아요!”) 내가 원하는 관계를 알아가는 일은 나의 마음만 들여다본다고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다른 이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고 공감 받아보기도 하고, 반대로 상대에게도 기준과 욕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며 서로 다른 기대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함께 궁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함께 나눈 소감과 질문은 연애에 관한 지식을 더 많이 아는 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배움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

 

(사진 2)각자 쓰고 그림을 오려 붙여 만든 이상형 표가 칠판에 여러 장 붙어 있다. 한 장애여성이 칠판 옆에 서서 자신의 취향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2)각자 쓰고 그림을 오려 붙여 만든 이상형 표가 칠판에 여러 장 붙어 있다. 한 장애여성이 칠판 옆에 서서 자신의 취향을 소개하고 있다.

 

누군가의 성적 취향을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며 치열했던 순간도 기억에 남는다. 한 장애여성이 특정한 취향을 이야기하자, 누군가는 본인만 좋다면 괜찮다는 의견을 냈고, 또 누군가는 폭력일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 직접 질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장면을 돌아보며, 성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일은 단순히 각자의 경험을 꺼내놓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당연하게 여겼던 기준에 질문이 생기기도 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이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무엇을 더 이야기해볼 수 있을지, 어떤 질문을 함께 붙들어야 할지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장애여성들과 섹슈얼리티를 함께 이야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 역시 배워가고 또 도전받는 중이다.

이런 고민들은 놀이터가 발달장애여성의 “자기옹호” 활동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자신의 생각과 욕구를 말하는 일은, 말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만으로 가능해지지 않는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만나고,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며, 내가 원하는 것을 실제로 시도하거나 (물론,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기로 선택하거나,)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고 요청받을 수 있는 관계와 조건도 필요하다. 활동가에게도 참여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모임 안에 남겨두지 않고, 일상에서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는 일이 과제로 남는다.

 

(사진 3) 여름 캠프 중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의 책상에 둘러 앉은 모습. 한 장애여성이 작성한 활동지를 토대로 자신의 성적 경험과 고민에 대해 나누고 있다. 귀기울여 듣기도, 놀라기도 하는 다른 이들.
(사진 3) 여름 캠프 중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의 책상에 둘러 앉은 모습. 한 장애여성이 작성한 활동지를 토대로 자신의 성적 경험과 고민에 대해 나누고 있다. 귀기울여 듣기도, 놀라기도 하는 다른 이들.

 

놀이터의 마지막 활동, 여름 캠프에서는 몸을 움직이는 워크숍을 하고,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 센터 셰어나 색다른의원과 같은 연대 단체들을 방문했다. 모임에서 나눈 고민을 다른 장소와 경험으로 이어가보려는 시도였다. 놀이터 안팎에서 연락처를 주고받고 함께 이야기할 사람을 만나는 일이 이후의 관계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캠프가 끝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2026년의 놀이터가 끝나지 않으려면, 이곳에서 나눈 이야기와 고민을 일상에서 이어갈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한다. 아직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한다. 공감 활동에 기꺼이 몸과 마음과 시간을 내어주는 든든한 발달장애여성들과 이런 질문을 품고 다음의 활동을 준비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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