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웹소식지>기획> [장애여성학교 리뷰글] 장애여성학교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건

장애여성학교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건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진성선

 

실패를 인정하는 것

13기 장애여성학교를 마무리하는 가을에 서있다. 음악반을 올해 4년차 하며 나는 장애여성 활동가로 장애여성들과 관계맺고 있는지 다시금 긴장하고 성찰해야 할 순간들을 맞이하고 있다. 

장애여성학교에서는 일상에서 더 많은 장애여성들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작년부터 탈시설 이후 독립하여 장애인지원주택에서 사는 장애여성들과의 만남은 더 다양한 장애여성의 몸, 차이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음성언어 중심의 의사소통에서 벗어나 비언어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장애여성과 마주했을 때 장애여성 활동가인 나조차 관계를 맺는데 주춤하거나 장애를 잘 모르겠다 며 단정했다. 언어/문자소통체계가 익숙한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이외에 다른 소통 방식을 떠올리지 못했다. 경직된 몸으로 장애여성과 거리를 두고 관찰자의 위치에서 참여자의 소통방식이나 행동을 분석한다.그러나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몸의 부딪힘과 시도의 공백없이 얼마나 장애여성의 몸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장애를 모른다는 말은 어쩌면  “의사표현을 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여성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건 아닐까. 실패 두려움을 감추는 나의 명분이 되버리지 않았을까?  장애여성의 자기결정 능력을 의심하고, 장애의 문제로 쉽게 규정하는 사회에서 음성/문자표현을 하기 어려운 장애여성들의 목소리는 더 드러나기 어렵다. 음성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 의사를 말로 명확하게 표출하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몸, 존재를 무시하는 결과가 되는 것일까? 장애가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있는 장애여성이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수많은 메시지들을 알아듣지 못하는 나의 문제인 것이다. 의사소통은 단지 말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소리를 내거나 손짓으로 무언가를 가리키거나, 시선을 옮기거나 미세하게 변하는 표정 하나까지도 상대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이 결코 상대에 대한 무시와 존중을 잃어서도 안된다. 소통한다는 것은, 우리가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계속 시도하는 것의 의미를 이야기해야 한다.

 

대상화되지 않는 공간

솔직히 ‘공감 밖은 위험하다’는 말을 할 정도로 공감 문턱을 나가면 장애여성이 차별이나 무시 받지 않는 공간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그만큼 공감은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이자 안전함을 유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움직여야 하는 공간이다. 착하고, 친절하고, 조심스러움에 갇혀 있을 때 동료로서는 관계 맺을 수 없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비판을 두려워한채 멈춰만 있다면 우리는 성장할 수 없다. 갈등하는 공간은 사라지고 고요하고 침체되는 공간으로 변화한다. 멈춰진 채 단지 친절한 공간에서 우리는 안전할 수 있을까? 동료시민이 될 수 있을까? 이 공간에서만큼은 대상화되지 않기 위해서 조직활동 안에서 동일한 기조와 원칙을 갖고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했다. 공감은 관계 안에서 갈등적인 상황과 마주할 때 나를 드러내고 솔직히 표현해도 괜찮다고, 실패하는 시간들을 갖자고 말한다. 더 이상 눈치보지 않고 얼굴을 마주 보면서 주변사람들, 나자신과 새롭게 관계맺어가기를 연습한다. 하지만 내가 온전히 깨져야 하는 순간을 피하면 또다시 쉽게 대상화되곤 한다. ‘평등한’ 문화를 만든다는 건 위태위태하고 지난 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저 좋은 말이나 사라져 버리는 말로 남지 않으려면 활동가로서 무엇을 함께 하고 있는지 나를 중심으로 말해야 한다.

 

자존심을 지키는 관계

내가 책임을 지고자 하는지는 장애여성과 어떤 파트너쉽을 가질 건지 고민과 이어진다. 우리는 장애여성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조건들을 만들기 위해서 함께 싸운다. 하지만 그 과정이 나 혼자만의 기량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완벽한 지원자의 모습은 아니다. 장애여성이 말을 할 때 어떤 이야기인지 알아듣기 위해서는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 동료로서 장애여성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지 않으면 장애여성이 혼자만의 힘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다. 혹은 너무나 손쉽게 배제될 수 밖에 없다. 장애여성이 누군가에게 보조를 요청할 때 단순히 상대방에게 미안함을 느끼거나 장애를 탓하지 않으려면 어떤 관계를 만들어야 할까? 실제로 장애여성과 관계에서 갈등해보고 실패해보면서 서로의 몸이 어떤 지 보이게 되는 감각들이기도 하다. 장애여성의 몸과 경험이 대상화되지 않으려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장애여성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공간이 가능하다는 건 다른 장애여성 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동료들을 지켜나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일상을 함께 한다고 해서 서로의 모든 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고 점점 관계가 쌓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직활동을 중요하게 논의하면서 ‘나의 시선 끝에 누가 있는지’ 봐야 한다는 피드백이 깊게 남아있다. 내가 지금 누구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나의 책임을 미뤄두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나의 활동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치열하게 계속 반복해야 할 이야기들이다. 장애여성학교를 함께 만든다는 건 실패를 인정하면서 우리의 일상을 지켜나가기 위해 매일 하는 활동이다. 앞으로도 갈등과 어려움들을 겪겠지만 무엇을 함께 책임지고자 하는지 잊지 않고 나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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