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협박이라는 강간죄 기준은 시설사회의 구조적 폭력 은폐한다. 동의여부로 바꾸어라!
나무 (장애여성공감)
2026년 9월 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9부 형사부(이하 ‘재판부’)는 인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에 대해 유무죄를 다르게 판단하였다. 그 기준은 피해자의 ‘저항’이었다. 재판부는 “성폭력 행위에 대해 저항이 어려운 장애인을 상대로 한 범행일지라도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의 항거를 불능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존재했다고 볼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가해자의 폭행‧협박이라는 유형력을 확인한 방법은 피해자가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필사적으로 ‘저항’했는지를 따지는 것이었다. 가해자도,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동일함에도 유무죄가 갈렸다. 재판부는 무죄를 판단한 피해자의 진술신빙성을 인정하였고, 시설이라는 구조적 조건, 가해자의 권익 보호 의무, 권력관계의 불균형, 장애 특성 등을 유의미하게 고려하면서도, 폭행‧협박이라는 낡은 기준을 유무죄 판단에 적극 적용하였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시설장은 직책, 비장애, 남성이라는 사회적 위치만으로도 거주인들의 의사를 제약할 수 있다. 그런데 검사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오랜 기간 반복된 피해, 가해자의 입소인들에 대한 통제가 일상화된 상황을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폭행‧협박 기준의 법조항을 적용하였다.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한 이유 중 하나로 공소장 변경 없이는 유죄 판단이 어렵다는 구차한 변명을 내놓았다. 재판부는 공소장 변경을 검사에게 요구하지 않았고, 위력 사용, 항거불능, 항거곤란 상태를 이용한 가해로 직권 해석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검사와 재판부의 의도하지 않은 공조가 무죄라는 판결로 이어졌다. 지난 70여년간 국가는 강력한 통념에 갇혀 강간죄를 협소하게 판단해왔고, 이로써 수많은 성폭력 가해자에게는 면죄부를 주었다.
천편일률적인 매뉴얼처럼 적용되는 ‘최협의’의 폭행‧협박 기준은 기준은 당장 바뀌어야 한다. 일본, 미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들이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의 부재로 바꾸고 있다. 이들 나라는 법개정에서 “단순히 물리적, 시간적 상황뿐만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관계, 권력 불균형, 심리적 지배 등 사건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하는데 필요한 요소1)”들을 동의 부재의 상황에 반드시 포함시키고, 피해자가 놓인 구체적 상황과 조건에 대한 맥락을 상세하게 청취하고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더 이상 피해자가 위험을 담보로 강력하게 저항하는 것이 가해자의 유형력의 유무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가 시설사회와 공모해온 역사를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인권침해를 중단하는 힘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색동원 사건 검사가 가해자의 범죄 혐의를 묻기 위해 적용한 법은 성폭력 처벌법 제6조(장애인에 대한 강간‧강제추행)와 장애인복지법상 제59조9(금지행위) 1항 장애인에게 성적수치심을 주는 성희롱‧성폭력 등의 행위 조항이다. 재판부는 동일한 범죄행위에 대해 성폭력 처벌법 위반은 무죄, 장애인 복지법 위반은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사건이다보니 재판부는 무죄 판결의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동일한 사건에 대해 분절적으로 법을 적용했다. ‘성폭력은 맞지만 강간은 아니다’라는 기이하고 참담한 판결을 사회에 내놓은 것이다. 유죄 판결에서의 15년 선고도 납득할 수 없다. 장기간 폐쇄적인 시설에서 시설장이 지위와 권력을 악용하여 다수의 피해자에게 자행한 심각한 범죄인 점을 고려하면 15년 선고는 엄중한 책임이 아닌 가해자에게 ‘아주 최소한의 책임’만을 물은 것이다. 색동원 현장 검증 당시 재판장이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의지가 무색하다. 시설의 실체는 무죄 판결로 인해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피해자의 목소리는 묵살되었다.
색동원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 누구인지 이 사회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색동원 거주인 33명 가운데 67%는 무연고자이다. 대다수가 인권침해가 발생했던 시설에서 색동원으로 전원되었다. 극소수의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증지적장애 및 중복장애가 있으며, 구어 소통이 어렵다. 피해를 경험해도 사회는 이를 알아들을 능력이 없고, 피해자들에게는 시설 밖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통로가 없다. 탈시설을 가로막는 제도 안에서 거주인들은 사망하거나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로 인정받아야 시설을 나올 수 있고, 그마저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 거주시설의 구조 자체가 차별이다.
또 하나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색동원 성폭력 사건에 대해 사회적 공분이 일어나고 이슈화되면서 특별 수사팀이 꾸려졌지만 피해자 중 다수인 중증장애여성들의 사건은 현재 경찰 수사단계에 멈춰있다. 2026년 1월 19일 중앙일보는 입수한 심층조사 결과에 따라 중증장애여성 19명 전원이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단독보도2)하였다. 그러나 경찰은 19명 중 ‘구어’로 피해 진술이 가능했던 3명만을 피해자로 특정하여 검찰은 기소하였고, 재판부는 피해자 3명 중 1명에 대해 강간죄 무죄를 선고했다. 다수의 중증장애여성들이 몸, 손짓, 표정 등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내용을 담은 심층조사 보고서는 주요한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현재 한국의 수사사법체계에는 비언어적 표현에 대한 피해 입증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에 비언어적 표현을 하는 중증장애인이 인권침해를 밝혀도 수사사법기관이 이해하지 못하며, 묵인에 동조하고 있다. 색동원 사건을 계기로 중증장애인의 피해 규명을 위해 기존의 구어중심(문답식) 수사방식을 전면 개선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색동원 사건 피해자만이 아니라 한국사회 곳곳에 존재하지만 사건화조차 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들의 피해 규명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인권침해 피해회복의 시작은 지역사회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
시설은 역사적으로 존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안전하지 않았다. 구조적 폭력이 은폐될 수 있는 곳이다. 재판부는 “가장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할 거주시설내에서 각 범행을 당하였는바, 피해자가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색동원 사건 이후 ‘안전하게 보호’되어야 할 시설에서 어떻게 심각한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냐며 대중은 분노했다. 거주시설에서 인권침해가 끊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설은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는 곳이라는 우리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제는 더 이상 장애를 이유로 시설에서만 살 수는 없다. 시설화는 “지배권력에 의해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보호/관리’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사회와의 분리, 권리와 자원을 차단함으로써 ‘무능화/무력화’ 된 존재이게 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제한하여 주체성을 상실시키는 것이다3).” 장애인은 다른 시설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존엄한 시민으로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어디에 살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조차 없고, 돌봄이 필요한 ‘몸’으로만 부각되어 국가와 사회가 중증장애여성의 삶을 격리되어 살아가야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면, 장애여성이 지역사회로 나온다고 하여도 시설화는 지속될 것이다. 어떠한 권리가 박탈되는지, 왜 이 권리의 박탈이 정당화되는지를 같이 살펴야 한다4). 다수의 중증장애여성을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는 사법적 한계, 보호의 이름으로 폭력을 용인하는 구조인 시설을 유지한 한국사회의 배제적인 정책, 장애여성을 시설화하는 제도에 대해 국가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리는 시설에 감금되어 폭력을 몸으로 겪어낸 피해자들과 감금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함께 싸우고 있다. 그 길에 장애여성의 삶의 역사를 중요하게 기억하고, 시설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저항하는 우리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1)프랑스의 비동의 간음죄 도입과 그 시사점. 전윤경. 한양대학교 법학연구소 학술지 법학논총 제42권 제3호(2025). 2026. 9. 21.
2)변민철 기자. [단독] 인천판 ‘도가니 사건’ 터졌다, 19명 성적 학대한 ‘원장 아빠’. 중앙일보. 2026.1.19.
3)조미경. [탈시설 운동의 확장을 위한 진지로서의 IL센터]. 2018년 IL과 젠더포럼 자료집. 2018.10.23
4)이진희. 장애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한 방향 모색. 장애여성공감
